"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피랍 사태 일주일째인 25일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된 23명 중 8명이 풀려나고 남자 1명이 살해됐다는 소식이 거의 동시에 전해지면서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과 분당 샘물교회은 크나큰 혼돈 속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여 있던 가족들은 특히 26일 새벽 "8명이 석방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인질을 추가 살해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소식이 전해지자 할 말을 잊은 채 망연자실했다. 석방은 오보라는 쪽으로 기울자 "사람을 두 번 세 번 죽일 수 있느냐"며 울부짖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8시부터 교회 본당에 모여 석방을 기원하던 신도 1,000여명은 9시22분께 인질 중 한 명이 살해됐다는 보도에 '안돼! 안돼!'라고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가족과 신도들도 있었다. 일부는 "아직 외신보도만 있는데 제발 오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교회 로비로 들어와 뉴스 속보를 챙기면서 얼굴을 감싸고 오열하다 실신하기도 했다.
끝내 이국 땅에서….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협상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가족들은 이날 '석방'과 '살해'라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보도에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 쥔 채 울고 웃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드디어 풀려났다"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리다 살해 소식을 접하고는 "이국 땅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속임수다", "독일인 인질도 살해했다고 했지만 살아 있었다"는 등 무사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에게 '인질 살해'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복지재단 관계자는 "일행 중 한 명이 살해됐다는 소식에 가족들의 충격이 대단하다"며 "정부의 공식 발표가 없는 한 언론 보도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지만 가족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힘겨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가족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핫라인을 통해 외교통상부에서 언론보도보다 2,3분 빨리 가족들에게 현지 상황을 전해줬는데 오후9시를 지나면서부터는 정부로부터 연락이 뜸해졌다"며 "우리도 방송뉴스를 보는 게 전부라 너무 답답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석방된 사람 대부분은 여자고 피살된 사람은 남자다', '석방된 사람은 없다'는 등의 얘기가 들릴 때마다 희비가 교차하는 등 너무나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석방의 기쁨도 잠시
오후 9시5분께 8명이 탈레반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는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 알려질 때만 해도 피랍자 가족들은 서로를 감싸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을 감동시켰다"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누가 석방되고 누가 계속 억류됐는지는 그 다음 문제였다.
아직 남은 사람이 15명이나 된다는 아쉬움은 크지만 일단 석방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가족들은 그 동안의 초조와 긴장, 불안과 고통이 한 순간에 씻겨나간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서로 "정말 축하한다. 이제 좋은 날이 시작됐다"는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피랍된 차혜진(32ㆍ여)씨의 동생 성민(31)씨는 "8명만 풀려났지만 협상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겠느냐"며 "아직 두려움을 모두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가족들 모두 '이제는 한숨 놓았다,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된다'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가족들은 이내 '인질 살해' 보도에 눈물을 쏟아냈다. 이들은 "누가 풀려나고 죽었는지 정부로부터 어떠한 확인도 받지 못해 미칠 지경"이라며 "아무 이유 없이 도대체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절규했다. 한 가족은 "석방됐다는 소식에 가족 모두 안도했지만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며 "'어제는 살아온다, 오늘은 살해된다, 내일은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에 가슴을 졸여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싶다"며 말했다.
이들은 26일 새벽 0시 20분께 "8명이 석방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사망자는 10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에 넋을 잃었다. 탈레반이 마지막 협상 시한을 26일 오전 5시30분으로 정했고 또 다른 인질을 살해할 수 있다는 뉴스에는 "도대체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주저 앉기도 했다.
박상준 기자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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