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23일 "납치된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무고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즉각 석방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데 그쳤다. 그나마 이 같은 언급도 피랍 사태 발생 5일만에야 나온 첫 공식 반응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한국인 납치사태는 아주 끔찍한 일이고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도 커다란 우려가 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고 말해 한미 사이에 모종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한국 정부의 탈레반과의 협상 방침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인지, 탈레반 수감자와의 맞교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회피했다.
미측이 이처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은 미국도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밀협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고, 따라서 탈레반 수감자와의 맞교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3월 아프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탈리아 기자 구출을 위해 탈레반 수감자 5명을 석방했을 때 미국은 카르자이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원칙만을 앞세우기에는 23명이 인질로 잡힌 현재의 사태가 너무 엄중하고 만에 하나 이들이 희생됐을 경우 한국인들의 정서가 폭발적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미국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전 시위는 곧 반미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미국은 강경한 말이든, 온건한 말이든 그 어떤 말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미온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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