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에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흔히 탈레반이라고 쓰지만 원래 이란계 아프가니스탄 원주민 파슈툰족 말로는 탈리브다.
'학생' 내지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복수형이 탈리반이다. 탈리브는 대개 이슬람 종교학교 마드라사에 다니는 학생을 말한다.
탈레반이 인구에 회자된 것은 1979년 친소 카르말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반소 무장 독립운동에 나서면서부터다.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른 탈레반들이 성난 표정으로 AK 소총을 든 모습은 한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소련판 베트남으로 만들면서 20년 가까운 게릴라전 끝에 1996년 정권을 잡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국가는 신정(神政)국가다.
종교와 정치가 하나가 된 나라다. 여기서 종교란 당연히 이슬람교다. 그런데 이슬람의 본질을 구현했다는 탈레반 정권 치하의 사회상을 보면 끔찍하다. 탈레반 근본주의의 대표적인 양상은 여성에 대한 처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은 여덟 살이 넘으면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면 안 된다. 오로지 코란만을 배워야 한다. 지하 학교에서 영어라도 배운다면 처형을 각오해야 했다.
■또 외출할 때는 부르카라고 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싸는 천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안 됐다. 가까운 남자 친척이 동행하지 않으면 택시를 탈 수 없는 것은 물론 재단사가 몸의 치수를 재는 것까지 금지했다.
탈레반은 축제와 음악과 춤도 금지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이슬람 공부를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구식 헤어스타일을 해서도 안 되고 사진이나 초상화를 소지하는 것도 불법이었다.
탈레반은 98년 8월 이틀간 마자르-이-샤리프에서 같은 이슬람교도(시아파)인 하자라족 비무장 민간인 8,000여명을 학살했다. 일주일동안 매장도 하지 않아 썩어가는 시신 중에는 여성, 노인, 어린이가 많았다.
■소련과 싸우는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많이 받은 탈레반이 9ㆍ11 테러 주동자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2001년 미군의 공격을 받고 내쫓긴 것은 아이러니다.
아프간 전쟁은 물론 국제법 상 불법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탈레반은 다시 아프간과 인근 파키스탄을 넘나들며 게릴라전을 펴고 있다. 제국주의 소련과 싸웠다는 이유로 탈레반이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현지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성의 눈으로 보면 아니다. 정신 나간 광신주의자들일 뿐이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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