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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의 역사적 뿌리는 제사 승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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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의 역사적 뿌리는 제사 승계권"

입력
2007.07.24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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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라이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고부갈등이 조선 전기 제사승계권을 둘러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이 나왔다.

종법(宗法) 질서의 확립과정에서 적장자가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사망했을 때 누가 제사를 주재할 권한을 갖는가를 놓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립을 벌이면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관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발행하는 반년간 학술지 <민속학 연구> 20호에 실린 김윤정(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씨의 논문 <조선전기의 고부관계와 그 변화과정> 에 따르면, 고부갈등은 맏며느리가 장자의 처로서 누릴 수 있었던 권리인 총부권(冢婦權)을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했다.

총부란 아들 없이 사망한 장자의 부인을 일컫는 말로, 조선전기까지 통상 딸로 간주되면서 장자인 남편 사후에 그를 대신해 제사를 주재하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아들을 낳지 못했지만 장자의 부인이라는 지위만으로 차남을 대신해 제사 주재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딸과 아들의 구분 없이 형제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와 재산균분, 처가거주가 보편적이었을 만큼 여성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고부관계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고, 며느리는 아들과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개국과 함께 적장자인 종자에게만 제사주재와 종통계승의 권리를 부여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질서를 확립하고자 했으나, 이 같은 국속(國俗)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제사 승계를 통한 가부장적 종법질서가 확립되면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딸과 사위에게 재산을 넘기지 못하도록 양자를 들이는 입후(立後)를 통해 며느리의 총부권 행사를 막는다.

중종 11년(1516년) 문헌에 처음 나타난 총부권 갈등은 이후 빈번해져 퇴계 이황의 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논란이 일던 총부권 개념은 명종 9년(1554년) 부모가 모두 사망한 후 제사를 지내다 죽은 장자의 처로 한정되고, 시어머니 생존 시 장자가 아들 없이 사망했을 경우 맏며느리는 총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제사주재권을 통해 물려받았던 남편의 권한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권한 축소 과정을 거쳐 며느리는 조선후기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됐다.

ㅊ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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