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아동심리학자로 명성을 날리던 브루노 베텔하임 박사가 1990년 83세의 나이로 자살한 사건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프로이드와 융에 버금가는 심리학계 거물로 대접 받았다.
특히 아동자폐증 연구에 선구적 기여를 했고, 장애아동 치료시설을 맡아 수많은 재활 성공사례를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속속 드러난 사실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의 박사학위는 가짜였으며 장애아들을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실험과 연구결과를 조작했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다.
▦ 유대인인 그가 생전에 학문적 명성 이상으로 존경을 받은 이유에는 나치의 유대인 캠프 생존자라는 사실이 작용했다.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사회적 연민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배가 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독일 관리인들을 매수해 전쟁 종료 직전에 혼자 풀려났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가짜 박사로 밝혀진 동국대 신정아 교수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훈장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기자들을 만날 때면 미술에 대해 이야기 하기보다는 삼풍 사고를 거론하며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 어떻게 이런 터무니 없는 학문적 사기가 가능했을까. 20세기 초 독일에서 벌어진 엉터리 결핵 백신 사건은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유럽에서 결핵이 창궐해 국가마다 백신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대인 학자 프리드리히 프리드만이 결핵에 걸린 거북 혈청에서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고 나섰다.
뜨거운 관심을 끌었으나 임상실험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프랑스와 백신 개발 경쟁에 빠져있던 독일 정부는 학자들이 제기하는 무수한 의혹들을 묵살하고 국가적 지원을 계속했다. 진실보다는 국가적 자존심이 먼저였던 것이다.
▦ 동국대는 지난 주말 신정아 가짜박사 사건의 최대 의혹으로 등장한 교수 임용과정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 아무런 비리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능력 있는 교수를 뺏기지 않으려는 당시 총장의 '특별한 배려'로 인한 일부 절차상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설명이다. 진실보다는 학교의 체면과 명예만을 생각하다가 또 하나의 의혹만 보태는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자칫 진실이 묻히고 지날 뻔 했던 황우석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진실은 검찰이 가려낼 수밖에 없게 됐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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