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다면 조금 더 일찍 나오면 되지 않나요?”
“….”
20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고에서는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검사가 칼날 같은 질문으로 피고를 압박하자 지체 없이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는 등 여느 법정과 다름 없었지만 구성원은 모두 학생들이다.
판사 2명, 검사 4명, 변호사 8명, 서기 2명, 무장 경찰 2명은 모두 1,2학년 학생들이 맡았고 배심원 역의 학생 9명이 재판을 거들었다.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처음 자치 법정을 시작한 행신고는 학생 스스로 교칙을 어긴 학생과 피해 학생, 증인을 조사하고 징계를 결정한다. 자치 법정은 기존의 체벌이 학생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낙인 찍는 식으로 이뤄졌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재판 대상은 지각하거나 두발 규정 등을 어겨 벌점 25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이다. 이들에게는 ‘청소하기’와 ‘담임 선생님 모닝콜 해드리기’, ‘선생님과 교환 일기 쓰기’ 등 20가지의 ‘처벌’이 내려진다.
재판 과정은 모두 학생들을 통해 이뤄진다. 교사들은 장비 지원, 법률 자문, 사전 교육 만을 맡는다.
학생끼리 연다고 해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느 법정 못지 않게 진지하고 엄숙하다.
검사들은 칼날 같은 질문으로 피고를 압박한다. 검사가 “학생은 5번이나 지각했는데 이유가 뭡니까”라고 묻자 피고인은 “늑골 골절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고 답했다.이어 검사가 “그렇다면 조금 더 일찍 나올 수는 없었나요”라고 몰아붙이자 피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에 지체 없이 변호사가 나선다. “골절상을 입은 날 이후 벌점을 줄일 푸른 교실 참여 횟수가 적었는데 왜 그렇습니까”라고 묻자 피고인은 병원에서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 참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배심원은 잠시 후 “병원 치료를 받은 점을 감안해 형을 감한다”고 결정했다.
변호사는 ‘피고 학생’이 직접 선임했다. 피고(17)는 같은 반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김혜진(18)양에게 변호를 부탁했다.
배심원이나 판사가 봐주는 법도 없다. 배심원 임준영(16)군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판단 만큼은 냉정했다”며 “배심원이 여럿이라 친구 편을 들어도 소용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판사 이송이(17)양은 몸이 아팠던 사실을 감안해 결정했다며 “피고는 1주일 동안 교장, 교감실을 청소하라”면서 봉을 ‘땅.땅.땅’ 3번 때렸다.
자치 법정은 학생들의 생활 태도를 확 바꾸어 놓았다. 양맑음양은 “예전에는 우리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사회봉사를 내려 반성하기보다 반감만 생겼다”며 “자치 법정에 서고 나서부터 지각도 큰 잘못이란 생각이 들어 최대한 일찍 등교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자치 법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정하다 보니 학생들이 교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생활 태도가 달라지면서 학교는 입 소문을 탔고 고양시 곳곳에서 전학 오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한상백 교장은 “생활 태도가 바로 잡히니까 학습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며 “지각 등 단순한 교칙 위반을 넘어 재판 범위를 폭력 사건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행신고를 비롯해 4개교에서 학생 자치 법정을 시행 중이며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말까지 15개교로 확대할 방침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김혜경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4년) 김도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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