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제시한 협상 마감시한인 22일 저녁 7시(한국시간 밤 11시30분)가 지남에 따라 협상시한이 또 한번 연장됐다. 탈레반이 요구조건을 추가하면서 협상시한을 세 차례나 연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은 20일 오후 11시께 아프간 주둔 한국군(동의ㆍ다산부대)이 21일 정오(한국시간 오후 4시30분)까지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철군 마감시한을 2시간 앞둔 21일 오후 2시30분(한국시간)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군은 연말까지 철수할 계획”임을 분명히 밝혔다. 방송 직후 탈레반은 철군시한을 22일 정오로 24시간 연장했다. 반면 자국민 2명이 납치된 독일 정부는 탈레반의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즉각 독일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의 의도는 한국과 독일 정부의 상반된 대응 태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탈레반은 협상에 적극 응하는 한국 정부에게 협상시한 연장이란 카드를 던지면서 자신들의 궁극적인 요구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21일에도 협상시한을 22일 오후 7시(한국시간 오후 11시30분)로 연장하면서 수감된 탈레반 조직원 석방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다. 처음 내세운 ‘자국 내 외국군 철수’는 명목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철군이 하루 이틀 새 이뤄질 수 없는 사안임을 감안하면 협상시한의 연장을 통해 외국군 침략의 부당성을 적극 알리면서 조직원 석방이란 실리를 챙기겠다는 속내다. 탈레반의 전략은 최근 아프간 내 외국군의 탈레반 소탕작전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외국군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다.
탈레반의 협상 전략은 3월 이탈리아 일간지 기자 납치사건에서 이미 예견됐다. 아프간 내 이탈리아군 철수를 요구했던 탈레반은 실제 협상에선 수감된 동료 석방을 요구했다. 이탈리아에서 자국군 철수 여론이 일자 이를 우려한 아프간 정부가 서둘러 수감된 탈레반 조직원 5명과 이탈리아 기자를 맞바꿨다. 탈레반은 협상을 주도하면서 상당한 정치적 성과를 이뤄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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