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반군이 20일 한국 정부에 대해 피랍 한국인 민간인을 석방하는 대가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한 것은 그간의 유사 사례를 비춰볼 때 예견돼온 것이다.
최근 발생한 유사한 납치 사례를 보면 탈레반 반군은 민간인을 납치한 뒤 해당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요구 조건을 내걸어왔다. 요구 조건을 변경하기도 하고 협상 시한에 융통성을 보였지만, 정부가 요구 조건을 거부하면 인질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랍 한국인이 무사히 풀려날 수 있느냐의 여부는 한국 정부가 탈레반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3월 이탈리아 기자 다니엘 마스트로자코모를 납치한 탈레반은 이탈리아 정부에 대해 이탈리아에 망명중인 아프간 출신 기독교 개종자 압둘 라만의 송환을 요구했다. 평범한 시민이던 라만은 아프간 수도 카불의 기독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기독교 개종을 선언해 아프간 이슬람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 반군은 이탈리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다시 아프간 주둔 이탈리아군 1만 8,000명의 전면 철수를 요구했다. 이마저도 거부되자 탈레반 반군은 아프간 교도소에 수감중인 탈레반 반군 5명을 석방하라는 것으로 요구조건을 재차 바꾼 뒤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납치된 아프간 운전 기사를 참수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아프간 정부로 하여금 수감중인 탈레반 반군 5명을 석방토록 하자 탈레반 반군도 이탈리아 기자를 풀어 주었다.
납치극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탈레반은 4월 아프간에서 일하던 인도인 엔지니어 1명을 납치하고, 인도 정부에 아프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인도 민간인들이 아프간 영토를 떠나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탈레반 반군은 인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며칠 후 인도 민간인인 목이 잘린 채 발견됐다.
5월에는 프랑스 여성 노동자 1명을 납치하고 프랑스 정부에 대해 아프간 주둔 프랑스군 1,100명의 전면 철수를 요구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 니콜라 사르코지가 프랑스군의 철수를 약속하자 프랑스인을 석방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외무부 장관 명의로 명확한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채 “장기적으로 프랑스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탈레반 반군의 이런 전력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에 대해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한국군 의료ㆍ공병부대인 동의ㆍ다산부대 장병 2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아프간 말로 ‘구도자’를 뜻하는 탈레반은 구 소련이 내세운 나지 불라 정권에 대항해 무장 투쟁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96년 정권을 전복한 뒤 이후 5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다.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탈레반 정권은 인구의 40%인 여성의 교육과 취업은 물론 외출까지 규제했으며 율법을 어기면 가차없이 절단과 처형, 공개 태형까지 서슴지 않아 국제 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우상파괴라는 명분으로 세계적 문화 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