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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럭키경성' 식민지조선판 '쩐의 전쟁'

입력
2007.07.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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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경성 / 전봉관 지음 / 살림 발행·344쪽·1만2,000원

국제무역을 위한 철도의 종착역이 될 항구의 후보지로 세 도시가 압축됐다. 어느 곳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세 곳의 민심이 들썩였다.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바람에 가장 가능성이 없던 작은 어촌이 최후 승자가 되고, 발표와 동시에 땅 투기 바람이 불어닥쳤다. 아시아 전역에서 토지 매매인과 중개인, 돈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한 달 사이 땅값은 1,000배 이상 치솟았다.

월급쟁이 두 달치 봉급이 이곳에선 담뱃값에 불과했고, 어떤 땅은 하루에 10번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반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혔던 곳의 땅값은 폭락했고, 빚을 내 땅을 사들였다 알거지가 된 주민들 중 자살하는 이가 속출했다.

2007년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1932년 나진이 청진, 웅기를 제치고 길회선 종단항으로 결정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발표 7년 전에 일대 섬과 땅을 싼 값에 사들였던 동일상회 대표 김기덕은 600배의 수익을 올려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됐다.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학부 교수가 쓴 이 책은 근대 조선을 주름잡았던 투기꾼과 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풀어낸 조선판 ‘쩐의 전쟁’이다.

근대 조선인들은 자본주의의 돈 맛을 본 첫 세대였다. 변화와 혼동의 시대는 금광, 쌀, 주식, 부동산, 정어리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투기 대상으로 만들었다.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지도자였던 소설가 김기진은 1935년 매일신보 사회부장으로 가면서 ‘오후에 출근해 조간신문 편집만 맡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 이유를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낮에는 명치정(명동)에 있는 주식취인소(주식거래소)에 나가 앉아서 투기를 해 볼 결심이었다. 주식 매매는 큰 자본이 필요치 않고 오직 총명한 판단만으로 짧은 시일 내에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5년간 이런 이중생활을 계속한 김기진은 한때 15배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빈털터리로 주식에서 손을 뗐다. 쌀 거래 시장인 미두시장에서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반복창은 최고 미인과 30억원짜리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국 전 재산을 탕진하고 네 칸짜리 움막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의 피에는 애초부터 투기 DNA라도 흐르고 있었던 걸까. 저자는 “그들이 투기에 열을 올린 것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가 그들을 투기판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기에 돈을 향한 열망이 더 클 수밖에 없었고, 투기를 억제할 제도도 구비되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이다.

전봉관 교수는 근대 조선의 살인 사건과 스캔들을 다룬 <경성기담> 등 한국의 ‘근대’에 관한 신선한 시각의 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학자. 전 교수는 <경성기담> 과 <럭키경성> 을 각각 1, 2부작으로 해서 앞으로 자살과 스트레스, 탈옥으로 대표되는 범죄 등의 주제로 우리 근대를 들여다보는 5부작을 구상하고 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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