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에 대못질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계기로 금산분리 완화 문제가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퇴임을 보름 가량 앞둔 윤 위원장의 소신 발언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코드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소유 및 경영 제한)를 엄격히 적용해왔다.
삼성생명에 대한 삼성전자의 의결권 제한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의 금융업 영위에 족쇄를 채우려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권오규 부총리가 윤 위원장의 소신발언에 대해 금산분리를 고수해야 한다고 반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반재벌정서와 오버랩되면서 해법을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현재론 물방울을 떨어뜨려 바위를 뚫는 것처럼 어렵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재벌들의 부침이 심했는데, 특정 재벌이 은행을 경영하다가 부실해지면 경제가 다시금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더욱이 재벌들이 금융회사를 영토 확장을 위해 사금고처럼 이용하다가 외환 위기를 초래한 뼈아픈 전례도 있다.
금산분리 문제는 18일 국회 정무위 소속 신학용 의원이 금산분리를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부처 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어온 금산분리 논란이 이제 국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윤 위원장의 '대못질'론처럼 금산분리를 마냥 성역시하는 것은 재검토할 때가 됐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발효를 계기로 금융계 빅뱅을 유도, JP모건 메릴린치 등과 같은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견고한 방화벽(Fire wall)을 설치하는 금산분리가 지속된다면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과 대형 투자은행 육성은 구두선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글로벌 산업 플레이어가 있듯이 세계 12위의 경제국가에 맞는 금융선수를 탄생시키려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환란 이후 산업자본의 금융진출을 규제하는 바람에 론스타 등 외국자본이 과실을 따먹고 있다.
자통법 발효 이후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칸막이가 제거되면서 금융산업은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자본의 손발은 상당부분 묶여 있다.
금산분리의 방화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이 반 재벌정서와 경제력 집중문제, 은행산업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중간단계의 절충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금융전업그룹에 대한 은행 소유 허용, 산업자본의 지분 소유 한도 상향조정, 과거 한미은행(현 씨티은행)처럼 산업자본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은행 지분 소유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산업자본이 1단계로 해외 은행을 인수, 은행경영의 노하우를 쌓은 후 2단계로 국내 은행과 합작토록 해 대형은행을 탄생시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미국의 GE와 싱가포르의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이 해외에서 은행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탄생을 위해서는 정부가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금산분리 문제에 관한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이의춘 경제산업부장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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