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의 경부 운하 타당성 연구보고서가 지난해 친(親) 이명박 전 서울시장 성향의 민간 연구단체인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는 지난해 9월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2005년 10월~2006년 6월) 등이 설립했으며, 회원 중에는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자문위원단에 이름을 올린 교수도 있다. 연구회에 보고서를 건넬 당시 시정연 원장은 현재 이 전 시장의 정책자문위원단을 이끌고 있는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었다.
19일 시정연의 선거법 위반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따르면 강 전 원장은 경찰 조사에서 “서울경제연구원이 ‘수도권 물류 개선을 위한 경부 운하 타당성 검토 연구’ 보고서 13권을 시정연에 제출했고, 이 중 1권을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줬다”고 밝혔다. 강 전 원장은 “나머지 보고서는 사무실에 그대로 두고 퇴임했다”며 서울시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경찰은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 실무자를 소환, 단체의 성격과 목적, 시정연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 이 전 시장과의 연계 가능성을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관련자들의 부인과 물증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강 전 원장을 포함, 지난해 시정연의 당연직 이사였던 전ㆍ현직 서울시 공무원 4명은 모두 이 전 시장의 지시나 서울시에 대한 보고 등을 전면 부인했다.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 추진단장인 장 전 부시장도 “보고서를 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연구회는 이 전 시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로 시작된 시정연의 선거법 위반 수사는 장기화할 조짐이다. 경찰은 수사 의뢰 하루 만인 지난달 22일 시정연, 23일 서울경제연구원을 각각 압수수색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시정연과 이 전 시장, 서울시와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 일각에서는 “대선 때까지 수사가 끝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 나올 정도다.
수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인 이 전 시장에 대한 직접 조사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지난해 보고서를 작성한 서울경제연구원 소속 세종대 교수 2명에 대해서도 미국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이메일만 보냈을 뿐 별다른 수사 움직임이 없다. 언론 브리핑도 조사자들의 발언을 진위 확인 없이 그대로 옮기는 식이어서 벌써부터 부실 수사 논란을 낳고 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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