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았던 상처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 프로야구가 선수협 사태 이후 최대 파행 위기를 맞고 있다. 당장 20일부터 후반기 레이스가 열리지만 ‘그라운드의 포청천’인 심판들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여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불투명해 졌다.
KBO는 19일 심판 파문의 중심에 있는 허운 심판을 다시 2군으로 내려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허 심판은 KBO의 조치에 반발, 19일 오후 5시 동료 심판 25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일 낮 12시까지 KBO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시즌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허 심판은 이 자리에서 지난 2월 이상일 KBO 운영본부장이 3개월 후 1군 복귀를 약속하며 써줬다는 각서도 함께 공개했다.
그러나 신상우 KBO 총재는 “심판들의 집단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나타내 양측이 극적으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후반기 개막일에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직무정지된 김호인 심판위원장을 따르는 일부 심판들은 올스타전이 열린 17일 잠실구장에서 모임을 가진데 이어 18일에는 ‘김 위원장의 복귀와 허운 심판의 1군 진입 반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8개 구단에 보낸 바 있다.
KBO가 지난 16일 허운 심판 등 8명을 1군으로 복귀시켰다가 사흘 만에 방침을 번복한 이유는 허 심판이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심판부의 3분의 2 이상이 나를 따르는 상황에서 무슨 파벌 싸움이 되겠느냐”는 발언을 한 게 결정적 이유가 됐다. 프로야구의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허 심판의 1군 복귀를 지시했던 신상우 KBO 총재는 허 심판의 이 같은 태도에 크게 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KBO는 지난 2월 팀장이던 허 심판 등 8명을 2군으로 강등시켰다. 당시 KBO는 심판위원회의 조직개편을 그 이유로 앞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하일성 사무총장이 취임 전부터 가졌던 심판진 세대교체 구상을 김호인 위원장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후 KBO와 심판부는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허 심판 등이 “무슨 죄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반발하자 이상일 운영본부장은 ‘3개월 뒤 무조건 복귀’ 각서를 써주게 됐다. 이 본부장이 “각서를 써주지 않았다면 올시즌 프로야구가 열리지 못할 뻔했다”고 털어 놓을 만큼 당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물론 각서는 KBO 고위층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KBO의 이 같은 무원칙한 인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약속한 3개월이 가까워지자 하일성 사무총장은 김호인 전 위원장에게 허 심판의 1군 복귀를 지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원칙이 무너진 인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신 총재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KBO 상층부는 “총재와 이 문제를 갖고 면담을 하면 총재로부터 무능하다는 질책만 받는다”며 이를 묵살했다. 김 위원장은 최후통첩 시한인 지난 13일 KBO의 지시에 대해 최종적으로 거부 의사를 전했고, 이틀 뒤 대기발령을 통보받았다.
심판 갈등 문제는 이로써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허운 심판이 KBO의 2군행 지시에 공개적으로 반발함에 따라 다시 미궁에 빠져들게 됐다. KBO는 지난해 신상우 총재-하일성 총장 체제가 들어선 후 끊임 없이 정실인사와 편가르기 시비에 휩싸여왔다. 결국 모처럼 맞은 프로야구 부흥 열기에 KBO 스스로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승택기자 lst@hk.co.kr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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