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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음모와 선정성에 뒤얽힌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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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음모와 선정성에 뒤얽힌 검증

입력
2007.07.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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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원래 경쟁하거나 적대하는 개인과 집단이 저마다 그럴싸한 주장으로 자신은 높이고 상대는 폄하하는 것으로 승부를 겨룬다. 정직하고 진실한 말보다는 왜곡되고 거짓된 말이 난무하는 이유다.

이런 정치의 속성을 지적한 경구(警句)가 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 하는 것을 분별하려면, 입술이 움직이는지 지켜보면 된다". 입만 달싹하면 거짓말이라는 얘기다.

정치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신랄한 풍자일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현학적 변명을 했다. "진실은 워낙 귀한 존재라 늘 거짓말을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닌다" (Truth is so precious she must always be attended by a bodyguard of lies). 진실과 마주하고 옷소매라도 잡으려면 주변을 에워싼 완강한 경호원, 거짓말부터 따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 언론부터 자세 가다듬어야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 논란 속에 이른바 스타 큐레이터의 학력 사기 스캔들이 불거졌다. 고졸에 미국 대학을 잠시 다닌 젊은 여성이 국내외 유명 대학의 학ㆍ석ㆍ박사 학위를 거짓으로 꾸며대 대학 조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자리를 차지한 사실이 드러났다.

줄기세포 사기에 버금가는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언론 표현은 과장되지만 그만큼 선정적 요소를 고루 갖췄다. 이명박ㆍ박근혜가 신정아에게 톱뉴스 자리를 내줄 정도였다.

쏟아진 기사를 읽다가 문득 언론이 공범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전문적 자질을 과시했는지 모르나, 무성한 의혹과 소문을 외면한 채 스타로 띄워준 자취가 뚜렷했다.

아무리 학력 시비가 흔하더라도, 상식적 안목에도 미심쩍었을 거짓 학력을 그의 이름과 함께 널리 알린 것은 큰 과오다. 그러고도 사과할 기미가 없는 것은 딱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스캔들이 터진 뒤에도 현란한 사기행각에 사회가 농락당한 것처럼 왜곡하는 행태다. 신씨를 마치 천재적 사기꾼인양 선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학력중시 풍토와 부실한 학위검증 시스템을 탓한다.

그러나 애초 허술한 거짓말을 거듭 지적했는데도 여러 편법으로 교수임용과 감독선임을 밀어붙인 것은 눈 뜨고 사기 당한 게 아니다. 내막을 짐작하면서도 애써 거짓을 비호한 흔적이 역력하다.

공적기관의 이런 잘못은 신씨의 사기행위보다 엄하게 문책해야 마땅하다. 이게 스캔들의 핵심이다. 세상의 거짓을 옳게 분별하려면 언론부터 스스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정치의 거짓을 논하면서 학력 사기 스캔들을 앞세운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혼돈 속을 헤매기 십상인 때문이다. 인터넷의 관련기사에는 '미국박사 좋아하는 세상을 비웃은 게 통쾌하다', '김대업 농간이다', '국정원에 맡겨라' 는 등의 장난기 섞인 댓글이 숱하게 올랐다.

실소하며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언론이 정치와 세상의 거짓을 또렷하게 분별하지 않고 두루뭉수리로 전하고 논평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기극과 후보 검증 논란을 한데 버무려 인식하는 현상에 그저 탄식만 할 수 없는 것이다.

● 올바른 '민주 선거' 인식 절실

후보검증 논란에서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데 힘써야 한다는 말로 들을 것이다. 그러려면 공정하고 진실된 검증을 방해하는 음모부터 색출하고 배척해야 한다. 특히 정보기관 등 국가권력의 검증 개입 공작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김대업 사기극'의 교훈은 후보 검증과 진실 규명을 내세운 사악한 공작에 언론과 사회가 함께 당한 것이다. 그 뼈아픈 실패를 한탄하던 정치세력이 공작적 행태를 답습하는 어리석음은 비웃어 마땅하다.

그러나 한층 개탄스러운 것은 독재 권력을 지겹도록 규탄한 진보언론이 민주주의의 토대인 공정한 선거를 막는 정보기관의 공작은 건성 비난하면서, 검증이 최고의 가치인양 외치는 모습이다. 참된 '민주 선거'의 관건이 무엇인지 함께 성찰해야 한다. 이를 위협하는 권력의 경호원부터 따돌려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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