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클로드 모네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그림이 자연의 일부를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물, 공기, 햇빛, 그리고 식물이라는 이 세계의 근본적인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온갖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에 본 오랑주리미술관의 거대한 <수련> 은 꽃 그림으로도 자연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위대함을 느끼게 했고, 오르세미술관에 걸려 있는 루앙대성당은 인간의 지각이 빛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깨닫게 했다. 수련>
그때부터 클로드 모네는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되었는데 이번 한국일보와 서울 시립미술관이 주최한 모네 전시회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 감격이었고 행운이었다. 수련>
특히 고요한 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은 하나의 정물화처럼 보이기 쉽지만 물 위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는 작은 미풍에도 흔들리는 생명의 전율을 감지하게 한다. 푸르다 못해 보랏빛을 띠고 있는 물 위로 초록의 넓은 잎과 분홍빛을 띤 하얀 꽃잎은 그 자체가 고요와 충만, 평온과 화려를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이 사소한 풍경에서 햇빛의 오묘한 작용과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과 식물의 예민한 반응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은 내게 예술의 위대함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모네 예술의 위대함이 어디에 원천을 두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가 <수련> 연작을 그리며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를 다시 찾아갈 기회를 가졌다. 수련>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기호학회에 참가하고 귀국하는 길에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지난 6월 말 지베르니를 다시 찾아갔다. 30년 만에 다시 찾아간 지베르니는 마치 시간이 멈추기나 한 것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에 동화된 삶을 즐긴 모네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낱 관광객에 불과한 나의 눈에 비친 지베르니는 모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 풍경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을 감지할 수 없었다. 내게 있어서 예술작품의 위대성은 그 빛을 감지하게 하는 데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있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빛을 그린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기가 등장한 그 당시에 예술이 살아남는 길을 찾고자 한 인상파 화가들, 그 가운데서도 모네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자연을 순간적 지각으로 포착하여 거기에 영원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지베르니에서 20여㎞ 떨어진 중세의 도시 레장들리스에서 제자가 경영하는 센 강변의 200년이나 된 아름다운 쉔도르 호텔에 묵었다. 모네 작품의 화사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들과 함께 물위에 어른거리는 기억을 나는 가능하면 오래 토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나는 서울에 와서 다시 모네 전시회를 다녀왔다.
김치수/문학평론가ㆍ이화여대 명예교수
◆빛의 화가, 모네=9월 2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www.monet.kr (02)72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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