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 민주화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했다가 끝내 한을 풀지 못한 채 2005년 1월 별세한 중국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를 기리는 글이 이례적으로 중국 관영 매체에 게재됐다.
개혁파 월간지로 유명한 <염황춘추(炎黃春秋)> 최신호는 총리 등 현직에 있을 당시 자오 전 총서기가 보여준 근무 자세를 높게 평가한 당원로 톈지윈(田紀雲ㆍ78) 전 부총리의 회상록을 실었다. 염황춘추(炎黃春秋)>
자오 전 총서기는 사망할 때까지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으며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는 당 중앙의 공식 평가로 인해 명예 회복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복권되지 않은 자오 전 총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장은 중국 언론에선 금기시돼 왔다.
하지만 염황춘추에 기고한 회상록에서 톈지윈은 자신이 부총리로서 보필한 자오 전 총서기가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낭비를 싫어했다고 소개했다. 일례로 자오 전 총서기는 집무실에 비치할 회의용 대형 원탁을 판공실에서 구입하자 그렇게 큰 테이블을 놓을 필요가 없다고 꾸지람했다고 톈 전 부총리는 전했다.
또한 자오 전 총서기는 귀빈에게 식사를 대접할 경우에도 솔선해 4채1탕(四菜一湯)으로 요리 가짓수를 줄이도록 지시하는 등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고 톈 전 부총리는 말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총리로 있는 동안 간부들의 적지 않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자세를 견지하라고 강조하는 한편 사무실 확충 등에 한 푼의 국고도 쓰지 않았으며 스스로 개인 주택을 사용했다고 톈 부총리는 회고했다. 염황춘추는 2월 호에서도 본격적인 삼권분립의 도입 등 정치개혁을 지도부에 촉구하는 논문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한편 톈 전 부총리는 97년 가을 제15차 당대회 개막 때도 다른 원로들과 함께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자오 전 총서기의 연금 해제와 권리 회복을 강력히 건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일간 <명보(明報)> 는 15일 인권단체 중국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를 인용, 톈 부총리가 “천안문 사건이 있은 지 8년이나 지난 만큼 자오 전 총서기의 당원 자격을 제한하고 자유를 구속하는 것 등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명보(明報)>
톈 부총리는 쓰촨(四川)성 재정청장으로 있던 중 당 제1서기로 부임한 자오쯔양의 눈에 띄어 83년 경제 담당 부총리에 임명된 이래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장쩌민(江澤民) 시대 10년에 걸쳐 재임했다.
당 정치국원을 2기 연속 맡았고 93년 3월 전인대 상무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대담한 시장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보수파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2003년 전인대 상무부위원장을 물러나면서 정계에서 완전은퇴했지만 다음해 염황춘추 10월호에 ‘개혁파 기수’인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공적을 치하하는 논문을 발표, 현지도부를 당혹케 했다. 톈 부총리는 자오 전 총서기가 운명하기 전 당 원로 중 거의 유일하게 병문안하기도 했다.
이정흔 기자 viva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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