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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진보의 역설' 현대인은 왜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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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진보의 역설' 현대인은 왜 불행한가

입력
2007.07.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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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ㆍ박정숙 옮김 / 에코리브르 발행ㆍ415쪽ㆍ1만

현대인의 생활은 불과 한 세기 전의 사람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풍족해졌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19세기의 노동자는 1주일에 평균 66시간을 일했지만 지금은 42시간만 일하면 된다. 당시 인류를 괴롭혔던 소아마비 천연두 홍역 같은 질병들은 거의 퇴치됐으며, 평균수명은 41세에서 77세로 2배 가까이 연장됐다.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도 많이 사라졌다. 삶의 외형적인 모습만 따지자면 현대인들은 ‘진보’ 의 명백한 수혜자인 셈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일례로 일상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50년 전보다 10배나 늘었다. 브루킹스연구소 경제학분야 연구원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진보의 역설> 에서 인류역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왜 마음의 행복을 느끼지는 못하는지를 묻고 있다. 저자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등의 다양한 이론들을 끌여들여 그 이유를 탐색한다.

현대인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과 외부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이 바람직하더라도 부정적인 시각, 불평하는 태도를 취하려는 본성을 숨기지 못한다. 때로 그것은 자기만족을 예방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최근 그 부작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외적인 변수도 무시할 수 없는데 특히 불안을 과장하는 현대 대중매체들의 책임이 크다. 이들은 이동전화에 의한 뇌손상, 극도로 드문 알레르기 등 100만분의 1에 불과한 위험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팽배한 개인주의도 불행감을 부추킨다. 가족 신앙 공동체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하더라도 그 이유를 외부에서 찾을 수 있었으나 가족규모도 축소되고 지역사회에 대한 유대감도 줄어든 현대에는 ‘나’ 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 됐다. 실패할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고 이는 곧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소득 증가가 반드시 행복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회학의 ‘관계불안’ 이론도 소개한다.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이 집이 우리가족에게 적당한가’ 보다는 ‘내 집이 이웃집보다 더 좋은가’ 를 생각하기 일쑤다. 아무리 물질이 풍족해도 상대적 박탈감은 생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여러 측면을 고려하건대 지은이는 현대인의 삶은 점점 윤택해지지만 행복은 증가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교과서적이지만, 그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자세를 지니라고 권고한다.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는 목적이 있으며 미래세대가 훨씬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일부로 자신이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학문성과를 끌어들인 분석이 다소 난삽하고, 피부에 와닿는 대안을 내놓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모자라는 것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이 새롭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당신은 행복한가? 원제 ‘The Progress Paradox’.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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