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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소재 블록버스터 '화려한 휴가' 흥행 성적 화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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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소재 블록버스터 '화려한 휴가' 흥행 성적 화려할까

입력
2007.07.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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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의 기억이 블록버스터로 되살아 났다. 26일 개봉하는 <화려한 휴가> (감독 김지훈)는 지금까지 광주민주항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 중 스케일이 가장 크다.

무려 100억 원을 들여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생채기를 생생히 재현한다. 죽어 땅 속에 묻힌 자와 살아 남아 땅 위에 선 자의 슬픈 시선이 스크린을 관통해 관객들을 응시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시선이 모이는 소실점은, 제작자도 분명히 밝혔듯이 상업적 성공이다.

그래서 멜로와 코미디,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가족애 등 온갖 흥행 코드가 뒤범벅돼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유다. 이 영화가 가라앉은 한국영화계의 분위기를 뒤바꿀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 피로 얼룩진 ‘아름다운 시절’

5ㆍ18이 배경이라고 해서 영화의 어법이 꼭 문어체 리얼리즘일 필요는 없다.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로 그것이 내동댕이 쳐진 현실의 엄혹함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찰리 채플린이나 이리 멘젤,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가 그런 역설을 잘 보여준다. 멀리 볼 필요 없이 <태극기 휘날리며> 가 좋은 전범이다. 역사책을 볼 때 무겁게 넘어가는 페이지라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페이지는 생의 찬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피 묻은 채 구겨져 있다고 할지라도.

<화려한 휴가> 는 순박한 택시기사 민우(김상경)의 눈에 비춰진 1980년 광주의 모습.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신군부의 집권야욕은 임계점까지 끓어오르지만, 그런 것은 민우와는 상관 없는 세상이다.

아리따운 신애(이요원)가 자기 회사 사장인 박흥수(안성기)의 딸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녀에게 다가가려 끙끙댈 뿐이다. 이런 설정은 무척 진부하지만 꼭 필요한 영화적 장치다. 곧 있을 살육전의 피비린내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새로움보다는 철저하게 검증된 공식을 따른다.

영화는 단체사진을 찍는 두 가지 시퀀스를 대비시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첫번째는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빼앗은 직후.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신애의 울부짖음으로 사실상 영화가 끝난 뒤 등장하는 두 번째 단체사진은 다르다. 이 시퀀스는 홀로 살아 남은 신애의 슬픈 판타지다. 죽은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신애의 표정은 어둠에 잠겨 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죄스러움. 100억원을 들여 만든 진혼곡의 멜로디다.

■ 스크린 안팎의 두 5ㆍ18

5ㆍ18은 진행형의 항쟁이다. 27년이라는 시간은 피붙이를 억울하게 떠나 보낸 이들에게 아직 ‘역사’가 될 수 없는 간극이다. 애국가와 동시에 시작된 발포, 논길 위의 버스를 향한 무차별 총격, 군화에 짓이겨지는 여성의 비명 등 영화 속 ‘그날’의 모습은 광주 시민들의 기억에 총천연색으로 남아 있는 진실이다.

죽은 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있으나, 죽인 자들은 서로 단죄하고 사면 받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광주에서 열린 시사회가 눈물바다가 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시사회가 열린 광주시 상무지구라는 곳은, 80년 당시 팬티바람으로 끌려간 이들이 갇혔던 군 감옥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화려한 휴가> 라는 영화에 대한 감상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영화 속 5ㆍ18은 상업적 성공을 위해 재구성된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막대한 예산과 27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은 이런 재구성에 뛰어난 현실감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그 현실감이 ‘과거’로만 읽히는 이유는 영화적 새로움이 부족한데서 오는 한계다.

흥행에 대한 강박감 때문인지, 이 영화는 80년 광주가 현재와 연결되는 모든 선을 잘라냈다. 때문에 5ㆍ18은 박제가 되다시피 했고, 영화 속 ‘전 장군’도 익명의 인물로 묘사되고 만다.

새로운 시도의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것은 코미디와 멜로 코드. 허나 이 흥행 코드들도 과잉된 인상을 준다. 스토리의 비틀림에서 오는 웃음이 아니라, 재담꾼 두 배우(박철민 박원상)의 입에 전적으로 기대는 유머가 아쉽다. 감독의 전작 코미디영화 <목포는 항구다> 의 한 장면을 집어 넣은 대목에서는 거북한 느낌마저 든다.

예비역 대령인 박흥수가 고통스런 번민의 과정 없이 시민군의 ‘수괴’가 되는 것도 영화적으로는 비약이라는 느낌이다. 어찌 됐든 하반기 한국 영화판도의 흐름을 좌우할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의 성패는 이제 관객의 몫이 됐다. 12세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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