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11일 올해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 보험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부여하고, 보험사가 은행의 예ㆍ적금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금융업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역간 이견조율을 전제로'라는 단서가 있지만, 이는 어슈어뱅크(보험+은행)를 정부가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은행업계 등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재경부가 이날 밝힌 보험업법 개정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보험사에 지급결제 등 다양한 겸영 업무 허용 여부를 검토해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보험사의 대형화를 촉진시키겠다는 것. 국내 증권사의 대형 투자은행화를 목표로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마무리된 만큼 '보험판 자통법'도 만들겠다는 의지다.
우선 보험사에 지급결제가 허용되면 보험사 고객들은 보험계좌를 통해 자금이체와 지로결제, 수표 발행 등이 가능해진다.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처럼 보험 가입자들도 입출금 기능이 있는 변액유니버셜 등과 같은 상품에 가입하면 월급 이체나 송금, 각종 결제 등의 소액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재경부는 또 보험사가 시중은행의 예ㆍ적금 상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은행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와 보험사가 은행 업무를 담당하는 '어슈어뱅크'간 치열한 고객 쟁탈전이 예상된다.
특히 정부는 보험사간 인수ㆍ합병(M&A)을 촉진하고 보험사의 자회사 범위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보험사가 다른 보험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하고 자회사 편입 요건도 완화하겠다는 것.
보험사가 덩치 키우기를 통해 강력한 보험그룹을 형성할 경우 우리금융 신한금융 등 은행을 주축으로 하는 은행그룹, 미래에셋 한국금융지주 등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증권그룹과의 한판 승부도 예상된다.
정부는 그러나 보험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두거나, 보험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험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두는 것은 어슈어뱅크의 가장 진전된 형태지만 산업자본이 일정 한도 이상의 은행 지분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대형 보험사들은 산업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또 현행 금산법에 따르면 보험사가 비금융사의 지분을 5% 이상 가지고 있으면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없는데, 이 또한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보험사의 업무 영역 확대와 대형화를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 방향에 대해 보험업계는 "방카슈랑스 허용으로 보험업계 몫을 은행에 내준 만큼 어슈어뱅킹도 허용돼야 한다"며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은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보험사에 지급결제 등 은행 업무를 맡기는 데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에 반대했던 한국은행도 이에 동의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때처럼 보험업법 개정도 금융권역간 힘겨루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 어슈어뱅크(Assure Bank)
보험(Assurance)과 은행(Bank)의 합성어다. 보험사가 지급결제 등 은행 업무를 담당하면서, 은행의 예금, 적금 상품 등도 판매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보험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것도 포함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아직 반대 입장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