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파업권 보장이냐, 시민의 공익 보호냐.’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는 노동계의 오랜 딜레마였다. 10일 발표된 병원 철도 등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보면 정부는 시민의 공익을 노동자의 파업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필수유지업무 제도와 대체근로 허용으로 필수공익사업장 노조의 파업권이 제약을 받는 등 파업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필수공익사업장은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유지업무는 정상 운영해야 한다. 문제는 해당 업종의 중요 업무 대부분이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돼 있어 노조의 최대 무기인 파업의 위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김재훈 서강대 법대 교수는 “시민들이 공공 분야의 노사 분규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정부 발표를 보면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다소 넓게 지정돼 있어 파업권이 크게 제약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파업 참여자의 50%까지 대체 근로자를 투입할 수 있게 한 조항도 노조에겐 치명적이다. 필수유지업무를 준수하면서 대체 근로자까지 쓴다면 노조의 파업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악법으로 지목해 온 직권중재제도의 폐지로 파업은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됐지만, 필수유지업무 제도와 대체근로 허용으로 노조의 파업이 ‘종이호랑이’가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수 차례 폐지를 권고한 직권중재 제도는 1953년 도입 이후 5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중의 생명과 건강 및 신체 안전에 관련된 필수 서비스를 엄격히 설정해 공익사업장 노조의 파업으로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했다”며 “노조에겐 쟁의권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가급적 업무를 세분해 최소한의 분야만 필수유지업무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필수유지업무 범위는 정해졌지만 인력 규모와 수준 등은 노사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노사간 마찰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노조는 필수유지업무 담당 인원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고, 사측은 최대한 늘리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철도 기관사와 정비사, 항공기 조종사, 응급실 업무 종사자 등 파업 위력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분야에서는 노사가 인력 규모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운영방법에 합의하지 못하면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노동위원원회는 노조의 의견보다 시민 공익을 기준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필수유지업무 운영을 놓고 노사 갈등을 넘어 노정 충돌까지 빚어질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직권중재제도가 있을 때도 불법파업이 있었듯,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시행돼도 불법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새 제도가 정착되려면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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