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마저 눅눅하게 느껴지는 장마철. 이럴 땐 좀 ‘센’ 영화가 당긴다. 필터 없는 담배나 둔탁한 아이리시 흑맥주 같은 느낌의 영화. 그런 자극에 ‘필’이 꽂힌다면 부천으로 가자. 12일 개막하는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2007)에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뇌세포를 콕콕 찌르는 영화들이 박스째 준비돼 있다.
33개 나라에서 온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가 무려 215편. 허나 무턱대고 갔다간 긴 상영표 앞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권용민 PiFan2007 프로그래머가 뭘 고를까 고민할 관객을 위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 5편을 추천했다.
■ 열흘 밤의 꿈(감독 시미즈 다카시 외 9명. 2006년)현대 시나리오 압도하는 100년전 판타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단편소설 <夢十夜> 를 10명의 젊은 감독이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로 탄생시켰다. 백년동안 죽은 여인의 무덤 곁을 지키는 남자, 자식을 버리려고 숲 속을 배회하는 아버지, 번민하는 사무라이와 그에게 깨달음을 강요하는 선승…. 무려 100년 전(1908년)에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했지만, 판타지의 전위성은 현대의 시나리오를 압도한다. 夢十夜>
■ 바람 속의 질주(감독 몬테 헬만. 1966년)B급영화 감수성으로 뒤집은 서부영화
웨스턴 장르의 전통을 B급 무비적 감수성으로 통쾌하게 뒤집은 영화. “B급 영화 더미 속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필름”이라는 것이 권 프로그래머의 설명. 살인자로 오인된 3명의 카우보이들과 이들을 집요하게 추격하는 수색대의 모습 속에 ‘선악의 대결’이라는 서부영화의 전형성이 처절하게 무너진다. 미청년시절의 잭 니콜슨을 보는 즐거움은 덤.
■ 로스트 인 베이징(감독 리 유. 2007년)자본주의에 길 잃은 중국인의 초상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작품으로 급격한 자본주의물결 아래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그렸다. 리우와 남편 안쿤도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베이징으로 상경한 소작농. 리우는 술취한 사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안쿤도는 그런 사장에게 협박 메일을 보내 돈을 뜯어낸다. 하지만 리우가 임신을 하자 두 사람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탁월한 연기와 치밀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
■ 리빙 앤 데드(감독 사이먼 럼리. 2006년)인간의 광기가 부른 혼돈과 공포
불안정한 인간의 고독과 광기를 다룬 사이코 스릴러. 쇠락한 영주 도날드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아들과 몸이 아픈 아내를 위해 영지를 팔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 제임스는 자신도 어른임을 증명하고 싶어하지만, 일은 계속 꼬여 간병인을 내쫓는 결과만 낳는다. 돌볼 사람이 없어진 제임스의 정신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저택에는 상상하기 힘든 혼돈과 공포가 찾아온다.
■ 유령 대 우주인(감독 시미즈 다카시, 도요시마 케이스케. 2007년)황당무계한 유머·기발한 상상력 톡톡
<주온> 의 시미즈 다카시와 <노부히로의 저주> 의 도요시마 케이스케가 각각 연출한 두 편의 에피소드를 엮은 작품. 시미즈는 일본전통괴담을 현대적으로 인용해 우주인과 유령의 부조리한 조우를, 도요시마는 이상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변해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독의 이름만 듣고 공포영화로 생각하면 오산. 황당무계한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노부히로의> 주온>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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