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가 무대다] <28> 평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가 무대다] <28> 평산

입력
2007.07.10 01:09
0 0

“네가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36년 전 할머니는 까까머리 고1 막내 손자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렇게 얘기했다. 서슬 퍼런 집달관이 1,000평이 넘는 종가(宗家) 고택 곳곳에 빨간 딱지를 붙일 때도, 집달관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애원할 때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 격랑이 일 때마다 손자는 할머니의 이 당부를 떠올렸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다짐은 목이 아니라 가슴에서 솟구쳤다. ㈜평산의 신동수 사장에게 할머니는 인생의 나침반이었다. 그 지침을 따라오길 30여년, 어느덧 할머니의 읊조림은 현실이 돼 있었다.

풍력발전기 핵심부품 점유율 세계 1위(23~25%)라는 성과를 만들어낸 신 사장의 이력은 장이모우(張藝謨) 감독의 영화 <인생> 속 대사 한 구절과 매우 유사하다. “닭이 크면 뭐가 되요? 거위가 되지. 거위가 크면? 양이 되지. 양 다음엔 뭐가 되요? 소가 되지. 소가 다 자라면? 어른이 되지.”

■ 4만5,000원을 얻어 3,000억원대 부자로

신 사장은 경남 밀양에서 5대째 내려오던 평산 신씨의 ‘1,000석군’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방직공장을 차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가문도 쇠락했다. 식으면 검게 변하는 꽁보리밥이 창피해 점심도 안 싸갔던 신 사장이지만 꿋꿋이 종가를 지킨 할머니의 가르침만큼은 잊지 않았다.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겨울 마을 뒤 산허리를 넘어가 나무 60짐을 해놓고 “어머니, 할머니, 겨울 잘 지내세요”라고 한 뒤 군에 입대했다. 제대하자마자 나무 30짐을 해놓고 상경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79년 다행히 친지가 하는 카펫회사에 취직했지만 하숙비(당시 9만원)가 없었다. 형에게 4만5,000원을 얻었다. 한 달을 열심히 일하고 손에 쥔 돈은 당시 고졸 초임 수준인 10만원. 하숙비와 교통비를 제하니 남는 게 없었다.

궁리 끝에 기숙사가 달린 카펫 공장 관리 업무를 지원했다. 그는 “밥도 공짜, 잠도 공짜니 한달 월급을 그대로 모았다”고 했다. 옷과 신발은 여기저기서 얻었다. 2년5개월 뒤 그의 수중엔 정확히 250만원이 있었다. 틈틈이 신문도 읽고 세상 정세도 읽으니 ‘철강이 답’이라는 결론도 나왔다.

그 길로 경북 포항에 내려가 전재산을 털어 철판(단조용 철강) 한 장을 샀다. 부산으로 가져가 파니 10만원이 남았다. 그는 “3년 동안 철판 장사하면서 장가도 가고 집도 얻었다”고 했다.

철판을 가공해 팔면 더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86년 한 철강회사의 처마 밑을 임대해 자유단조 제품을 생산하는 평산철강을 세웠다. 집안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회사 이름에 ‘평산’을 붙였다. 할머니는 공장을 세운 다음해인 87년에 세상을 떠났다.

셋방살이를 벗어나 90년 부산 다대포에 제 공장(750평)을 지었고, 2000년엔 5,000평 규모의 녹산공장(부산 송정동 녹산공단) 시대를 열었다. 중간에 찾아온 외환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환율이 오르자 수익성이 좋아졌다. 조선 및 산업플랜트 부품이 주력이었다.

2000년 그는 그간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물었다. “외국을 자주 들락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풍력발전이 보입디다.” 풍력발전은 유가가 배럴 당 40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풍력발전의 몸체인 타워의 플랜지(이음장치)를 만드는 신재생 에너지 부품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계산은 적중했다. 2003년부터 연평균 성장률 57%를 기록하며 풍력발전 핵심부품 점유율 1위 업체로 뛰어올랐고, 지난해 공모가 1만5,500원(액면가 500원)으로 코스닥에 화려하게 입성해 주식평가만 1,000억원이 넘는 부자가 됐다. 올해 9월엔 지사공장(7,000여평), 내년 1월엔 중국 현지법인 공장도 가동에 들어간다. 현재 그의 주식가치는 3,000억원 대다.

손자가 생전 할머니의 넋두리와 한을 차고 넘치도록 풀어준 셈이다.

■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20년 넘게 곁눈질하지 않고 단조사업에만 몰두한 결과였다. 그는 “단조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주문제작 방식이기 때문에 똑 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게 적당한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발로 뛰며 미래사업의 해외 트렌드를 꼼꼼히 살핀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성공비결은 따로 있다. 일화 한 토막이 있다. 90년대 어느날 작업 중 직원 한명의 눈에 쇳물이 튀는 사고가 발생했다. 늘 현장에서 직원과 함께 했던 신 사장은 그 직원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신 사장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실명한 직원은 회사에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장님이 계속 울었어요. 식구가 당한 것처럼 계속 울었어요”라고 했을 뿐이다.

신 사장은 “내 장점은 사람의 맘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가 크기 전엔(직원 30명) 매년 케이크 하나 달랑 들고 직원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는 “(돈이) 없는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빼앗는 것”이라며 “겉으로 존경하는 척하는 것보다 마음이 와 닿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사업이 성공한 뒤에도 성과를 직원들과 함께 했다. 코스닥에 등록할 때도 그는 직원들에게 주식을 원래 배정된 것보다 2배 가까이 많이 줬다. 그는 “돈을 벌면 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벌면서 베푼다는 원칙이 평산을 반석 위에 세웠다”고 자부했다. 2001년 모교인 밀양고에 장학재단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투박한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한다. 회사를 자랑스러워 하고 일에 보람을 느끼는 직원들에게 그는 사장이기 전에 큰 어른이다.

● 신동수 사장은

-1955년 경남 밀양의 평산 신씨 막내로 출생

-71년 아버지 사업 실패로 가문 쇠락

-79년 상경. 형에게 4만5,000원 빌림

-82년 월급 모은 250만원으로 철판 한 장 구입

-82~85년 철판 중개업으로 사업자금 마련

-86년 평산철강 설립

-2001년 부산 송정동 녹산공장 신축. 밀양고 장학재단 설립

-2006년 코스닥 등록으로 1,000억원 대 부자(칠천만불 수출탑 수상, 중국 현지법인 설립)

-2007년 주식가치 3,000억원 대로 증가(지사공장 가동 예정)

부산=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맞춤생산 자유단조 부가가치 높아 안정적 성장

자유단조 업체인 ㈜평산의 주력은 신재생에너지 부품 사업이다. 그 중에서도 청정에너지의 꽃인 풍력발전의 핵심 부품을 만들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기의 플랜지(이음장치)는 점유율 세계 1위다.

평산은 1986년 남의 공장에 세를 얻어 철판을 두드릴 때만 해도 영세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한길만 걸은 신동수(52) 사장의 외고집과 해외 사업 트렌드를 읽은 혜안이 오늘의 평산을 일구었다.

평산은 주문자가 원하는 부품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자유단조로 선박과 발전, 석유화학 플랜트의 부품을 만들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부가가치가 높다.

특히 앞으로 5년간 전세계 풍력시장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21%나 돼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올해 시장규모는 21조원, 2011년엔 55조원이 예상된다. 평산은 풍력산업 매출 비중(40%)을 늘려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다지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평산에 있어 끊임없는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2,000톤급 프레스에 이어 올해 9월 가동하는 지사공장(제3공장)에는 9,000톤급 프레스를 갖춘다.

두산중공업(1만톤급)에 이어 국내에선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규모(50~100톤급 제품)가 커질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3배 이상 올라가게 된다.

지난해 12월31일 설립한 중국 다롄 현지법인(평산금속제품 유한공사) 공장이 내년 1월 문을 열면 현지 중소형 조선업체의 부품 공급뿐 아니라 2메가와트(㎿) 이상의 대형 풍력발전기로 전환하는 중국시장을 선점하게 된다.

평산의 가치는 주식시장과 해외가 먼저 알아봤다. 지난해 공모 시 경쟁률 263대 1로 코스닥 황제주가 된데 이어, 올 초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로부터 624억원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평산의 2011년 매출 목표는 지난해(1,673억원)의 6배인 1조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