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책은행 개편안이 썩 흡족하진 않은 듯했다. “산업은행을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IB)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결단은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구시대적인 공급자적 논리로 개편안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아쉽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정부의 국책은행 개편 골격은 짜여졌고 그가 구상하는 산업은행의 미래상도 확고했다.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그리고 산은자산운용을 ‘3각 편대’로 제대로 된 IB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책은행 개편안이 발표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김창록(사진) 총재를 만났다.
_정부의 국책은행 개편안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산업은행을 통해 글로벌 IB를 키우겠다는 결단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자 위주의 발상이 아쉽습니다. 산업은행에 공공 IB 기능은 남겨둔 채 대우증권에 상업적 IB 기능만 넘겨주라는 것은 급변하는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시대에 뒤처진 발상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 기업들은 대출, 해외 차입, 회사채 발행, 주식 발행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자금을 조달합니다. 한 금융회사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기능이 여러 금융회사로 분산되면 기업만 불편을 겪을 겁니다.”
_개발금융 시대 국책은행의 역할은 끝났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산업은행을 없애든지, 민영화하든지, 아니면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발전시키든지 3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산업은행을 없애면 대한민국 산업 전체가 흔들립니다. 민영화도 정부가 현물출자한 주식(도로공사 등)의 평가가 어려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언젠가 민영화를 해야겠지만 현재로선 국책은행의 새 역할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친환경산업이나 고령화산업 지원 등 민간 부문이 할 수 없는 신정책금융 지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중장기적 민영화에 대비해 IB 업무를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_조달금리 등에서 시중은행과 불공정 경쟁을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의 지위를 등에 업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불공정 경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과 너무 다릅니다. 시중은행은 0.1%짜리 저원가성 예금을 통한 자금 조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반면 산업은행은 산업금융채권을 발행해 시장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죠.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에 비해 금리 비용이 1%포인트 이상 높습니다.”
_IB 부문의 불공정 경쟁 우려는 남아있는 것 아닌가요.
“IB는 기본적으로 상업적 영역입니다. 산업은행 IB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중소기업대출 등으로 손쉽게 돈을 벌며 IB 업무를 도외시했던 시중은행들이 이제 와서 돈이 된다 싶으니까 공정 경쟁 운운하며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_감사원은 대우증권 매각을 권고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IB 육성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오너가 증권사 CEO를 단기업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단기업적을 위해서는 단순중개(브로커리지)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요. 산업은행이 IB 업무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선임된 대우증권 김성태 사장에게 ‘3년간 돈 벌지 않아도 좋다. 배당이 전혀 없어도 좋다. IB 인프라를 깔아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IB 육성은 공공영역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_대형 글로벌 IB를 육성하기 위한 비전은 무엇입니까.
“취임 이후 1년 반 동안 산업은행의 정체성 문제에 온 신경을 쏟았는데, 결론은 증권사 혼자서는 절대 IB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일본만 해도 4대 증권사가 모두 은행과 짝을 이뤄 IB를 추구했습니다. 은행의 자금력, 인력, 그리고 해외네트워크를 지원받는 증권사만이 제대로 된 IB로 갈 수 있습니다. 조만간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임원들의 공동 워크샵을 열어 협력방안을 모색할 겁니다. 산업은행이 만든 상품을 대우증권이 팔고, 산은자산운용이 자산을 운용하는 등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3각 편대를 확실히 구축할 겁니다.”
_국책은행 개편안의 모호한 결론 때문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간 업무영역 충돌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해외지원 업무는 수출입은행, 국내지원 업무는 산업은행이라는 논리는 전형적인 공급자적 시각입니다. 국내외에서 모두 지원을 받아야 하는 기업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전혀 없는 거죠. 해법은 단순합니다. 수출입은행이 가장 먼저 공공적 측면에서 지원을 하고 이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자투리 부분을 산업은행이 신디케이션 등을 구성해 지원하면 됩니다.”
_이른바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기업을 다 죽이려는 것 같습니다. 급여를 많이 받는 대신 많이 벌어서 정부에 배당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적자 내서 배당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한 겁니까? 급여에 대응하는 업무 내용에 대한 합리적 평가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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