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J. 벤턴 지음ㆍ류운 옮김 / 뿌리와 이파리 발행ㆍ488쪽ㆍ2만8,000원
생물의 멸종이라 하면 흔히 공룡의 멸종이나 아마존숲에서 일어나는 생물 다양성의 감소를 떠올린다. 이 책 <대멸종> 은 공룡의 멸종보다 훨씬 전에 있었고 그보다 더 심각했던, 전멸에 가까웠던 대사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책 원제가 보여주듯 ‘생명이 거의 다 죽었을 때’ (When Life Nearly Died)의 이야기다. 대멸종>
지질학에서 말하는 페름기의 마지막은 지금부터 2억5,000만여 년 전의 시기다. 공룡이 멸종된 시기보다 4배나 더 뒤로 거슬러간 시간이며, 고생대와 중생대를 가르는 시기다.
이 때 지구상 생물종 중 90%가 멸종되고 단 10%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과학계 전반이 인정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또 그 원인이 운석충돌 때문인지, 아니면 화산 분출로 시작된 지구 기후 변화 및 관련 반응 때문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페름기 대멸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단순한 교과서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이 주제와 관련된 과학자들의 연구와 반론의 전개를 통해 새로운 주장이 어떻게 과학적 사실로 발전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문용어의 난해함을 피할 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가 책의 구석구석에서 최신 연구 논문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의 주제 외에도 독자들이 살펴보면 흥미로울 부분이 두 가지 정도 있다. 첫째는 아주 오래 전의 대멸종이 현대의 지구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현대 환경 문제의 핵심 주제는 지구 온난화와 생물다양성의 파괴다. 과연 수억년 전 갑자기 일어난 대멸종에서 인간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현대의 환경문제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 둘째는 지질학이라는 학문을 중심으로 고생물학, 진화생물학, 지구화학과 같은 학문의 제 분야들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문의 융합이라는 주제가 난무하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계 안에서조차 과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아직도 <네이처> 나 <사이언스> 에 실리는 논문이 성경만큼이나 진리라고 믿는 대중과 일부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의 반 이상은 ‘뻥’이다. 어느 과학자처럼 자료를 속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 실린 논문은 과학의 최첨단에서 새롭게 발견된 연구이며, 따라서 언제든지 그 가설은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사이언스> 네이처>
<대멸종> 을 읽으면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발전하며 결국 어떻게 이론으로 변화하는지, ‘과학에 대한 과학’의 묘미도 느껴보길 바란다. 대멸종>
이 책이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좀 더 문학적인 표현의 과학 대중서인 <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와 다른 각도에서 더 긴 시간 동안의 고생물학을 살펴본 <산소> , 그리고 같은 주제에 대해 좀 더 간략히 논의한 <멸종> 도 추천하고 싶다. 멸종> 산소> 가이아>
강호정ㆍ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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