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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식물들] <2>숲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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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식물들] <2>숲을 보다

입력
2007.07.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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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숲…그 나무를 닮은 셰르파

산을 오르는 일을 우리는 등산이라 한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선 보통의 우리처럼 산을 오르는 일을 트레킹(Trecking)이라 하고 장비를 가지고 정상을 도전하는 등반대가 산엘 오르는 것을 클라이밍(Climing)이라 한단다.

카트만두에서 십 여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는 작은 비행기에 실려 마치 수직절벽에 내려앉듯, 도착해 등반이 아닌 트레킹을 시작한 곳은 루크라.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은 2,800m이다. 히말라야에 내딘 첫 발이다.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산의 냄새가 느껴진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을 수직적으로 구분해 보면 1,000m씩 올라가면서 열대에서 시작해 아열대, 온대, 아고산, 고산지역으로 이어진다. 5,000m를 넘어서면 식물이 더 이상 살수 없는 그래서 신들의 영역이라 하는 설산이 나타난다. 산행의 시작인 루크라에서 바라보이는 숲은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산림대이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 숲을 이루고 있는 가장 많은 나무들은 소나무류이다. 이 곳에선 ‘푸른소나무(Blue Pine)’라고 한다. 푸르른 숲의 주인이니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싶다. 학명을 따서 부르면 ‘월리치아나 소나무(Pinus wallichiana)’라고 해야 옳은데 솔잎을 보니 5장. 그래서 난 그냥 ‘히말라야잣나무’라고 하기로 했다.

하지만 푸른 숲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잎이 아주 길게 늘어진 소나무 종류도 있다. 잎의 길이가 23~38cm정도나 돼 나무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금세 이름이 알고 싶어진다. 흔히 ‘Chir Pine(Pinus roxburghii)’이라고 부르는 이 소나무는 우리말 이름이 없으니 그냥 ‘긴잎소나무’라고 구분했다. 분포상으로는 히말라야 잣나무보다는 조금 아래쪽이 주로 살고 있는 곳이다.

소나무 숲에서 간혹가다 훨씬 짙푸르고 그래서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나무가 있다. 바로 히말라야솔송나무(이건 순전히 내가 붙인 이름이며 학명은 Tsuga dumosa이다)이다.

우람하고 곧고 강한 느낌이지만 잎도 짧고, 솔방울도 작고 동글동글한게 귀엽다. 일행이 그 나무의 이름을 묻기에 말해주었더니 어떤 책에선가 읽은 솔송나무의 향기를 찾아 숲에서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 숲과 나무가 주는 신선함을 느끼다 보면 가능하다 싶기도 하다.

더 높이 오르면 더욱 짙푸르러지는 전나무가 보인다. 히말라야전나무(Abies spectabilis)다. 풀도 나무도 모두 누이고 마는 차갑고 서늘한 바람이 가득한 이 고산에 마지막으로 버티고 선 침엽수인 이 나무들은 때론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뿌리를 내려 바람을 따라 한 방향을 향해 깃발처럼 가지를 펼쳐낸다.

그 사이사이 너덜거리는 갈빛 수피의 자작나무(Betula utilis)가 신비로움을 더하고 역시 바람이 잘 다듬어 놓은 만병초들과 노간주나무들이 이룬 아름다운 터널을 걷기도 한다.

그리고 그 즈음이 바로 나무가 서서 바로 자라지 못하는 수목한계선(Timber line)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선은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하고 그 위로도 키 작은 나무들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곳이 바람과 나무가 겨루는 가장 치열한 투쟁의 현장임에는 틀림없다.

산을 오르며 많은 한계에 부딪혔다. 마음처럼 빨리 걸어도 안되고 씻기도 자기도 어려운, 문명과는 동떨어진 극한 조건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점차 편안해졌다.

외적인 치장을 벗어낸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한 자유스러움일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도 산행을 도와준 셰르파족 포터들에서 느낀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어려움을 덜어주는 충직하고도 순박한 마음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지난 세월동안 전혀 모르고 살았던 이들이 이렇게 한순간 정이 통해 산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멀리 있었으나 서로 비슷한 나무와 숲을 바라보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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