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텔레비전의 월요일 밤 프로 <미녀들의 수다> 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 미혼여성 열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다섯 명의 남자패널과 얘기를 주고받는 토크 쇼다. 미녀들의>
프로그램 제목이 가리키듯, 출연 여성이 죄다 아리땁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몇은 과연 수다스럽다. 예컨대 핀란드에서 온 따루 살미넨 씨나 캐나다에서 온 루베이다 던포드 씨가 그렇다. 그들의 한국어가 그만큼 익어 있다는 뜻일 테다.
중년의 한국 사내인 내가 이 프로를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은 새뜻한 외국 여성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기 때문일 게다. 말해놓고 보니 정치적으로 그다지 올바른 발언 같진 않지만, 그 정도는 순순히 자인하겠다.
그러나 이 외국인 미녀들이 제 모국어로 또는 영어로 수다를 떤다면, 그걸 굳이 보게 될 것 같진 않다. 그 외국어를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그럴 경우엔 자막이라도 띄워주겠지.).
● 외국인 여성들의 한국어 수다
그 여성들이 외국어로 얘기한다면, 그들이 지금 한국에 머무르고 있든 그렇지 않든, 외국방송의 토크 쇼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게다. 그러니까 나도, 이 프로의 여느 시청자처럼, 이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어로 수다를 떨기 때문에 <미녀들의 수다> 를 본다.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은 대다수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은 경험이다. 그 점에 비기면 출연자들이 미녀라는 것은 부차적 흡인 요인일 따름이다. 미녀들의>
한국인 시청자들이 전혀 몰랐던 걸 이 외국인 여성들이 가르쳐 주는 것 같진 않다. 그들이 한국 풍속에 대해 의견을 내놓든 제 나라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하든, 그것들이 아주 새로운 정보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한국인이 잘 알면서도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거나, 외국에 대해 올바르게 짐작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해 주는 정도다.
그런데도 이 프로에 이끌리는 것은, 그런'낡은' 정보가 외국인들의 서툰(더러는 그래서 외려 매력적인) 한국어에 실린다는 점, 그리고 그 서툰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들이 하나 같이 어여쁜 여성이라는 점 때문일 게다.
이들의 매력이 그 미모나 휘어진 한국어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지적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예컨대 얼마 전 고국으로 돌아간 미국인 레슬리 벤필드 씨나 인도인 모니카 사멀 씨가 그렇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50만 정도라 한다. 그들은 대개 형편 어려운 한국인의 배우자이거나 이주노동자다. 그러니까 미혼 여학생들이 다수인 이 프로 출연자들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표준에서 꽤 멀다. 그걸 두고 이 프로의 '정치감각'을 탓할 수는 없겠다.
<미녀들의 수다> 는 오락 프로이지 시사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출연자들이 죄다 미인이라는 것 역시 끄집어내 지적할 악덕이랄 순 없다. 텔레비전의 이런저런 오락 프로그램에 비치는 한국인 여성들 역시 거의 다 미인이다. 미녀들의>
그래도 나는, 이 프로의 시청자로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한 회의 출연자가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얼굴만 비치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출연자도 생긴다. <미녀들의 수다> 가 아니라 <인형들의 전시장> 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야기 흐름도 산만해진다. 토크멤버 풀을 헐겁게 고정하되, 다섯 명 정도가 돌아가며 출연하게 하면 어떨까? 인형들의> 미녀들의>
둘째, 프로그램 들머리의 집단 춤이나 얘기 중간의 소위 '진실게임' 같은 것은 보기 민망하다. 같은 맥락에서, 출연자들의 사생활 얘기가 좀 줄었으면 한다. <미녀들의 수다> 는 출연자 구성부터 이미 충분히 선정적이다. 거기에 진부한 선정성을 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녀들의>
● 인형들의 전시장이 안 되려면
셋째, 남성 출연자들이 좀더 의젓해졌으면 좋겠다. 방송 초기에 한 남성패널이 몰상식한 짓을 저질러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일부 남성 출연자의 언행은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그것이 패널들 자신의 문제인지 아니면 작가나 연출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미녀들의 수다> 를 굳이 10대들의 놀이터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구닥다리 세대의 편견을 드러낸 건가? 미녀들의>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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