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계에 장편소설 양산 체제의 틀이 갖춰지고 있다. 유수 문학상들이 장편에만 소설 부문 상을 주기로 결정하는가 하면, 신예 장편 소설가를 발굴하기 위한 상이 잇따라 신설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화예술위)도 장편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올렸다. 단편 위주로 짜여진 소설 창작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단 및 출판계의 요구와 방향이 나란하다.
대산문학상을 주관하는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소설 부문 상금을 5,000만원으로 올리고, 내년부터는 장편에만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장ㆍ단편 구별 없이 소설 단행본을 심사하던 기준을 15년 만에 바꾸는 것이다.
곽효환 사무국장은 “미발표작을 공모하는 장편소설상은 여럿 있지만 출간된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수상작을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간해주고 있는 만큼 기성 문단의 장편 생산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표했다.
31회를 맞은 ‘오늘의 작가상’도 올해부터 장편만 공모받아 지난달 수상작을 냈다. 상금도 3,000만원으로 인상했다. 주관 출판사인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는 “외국 출판 편집자는 번역 소개할 작가 선별 기준으로 수상 경력, 베스트셀러 보유와 더불어 5편 이상의 장편 집필 경력을 제시한다”며 “소설을 장편(novel)과 동일시하면서 단편(short story)보다 선호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려면 국내 장편의 한 해 출판량을 현재 100권 가량에서 500권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계간 <창작과 비평> 을 통해 장편소설 활성화 논의를 선도하고 있는 창비는 올 초 창비장편소설상(상금 3,000만원)을 제정하고 9월까지 작품 공모 중이다. 염종선 편집장은 “좋은 장편에 대한 독자의 요구와, 단편의 시야를 벗어나 다양화ㆍ파편화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장편소설 생산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작과>
장르의 구애 없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중간소설’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3월 신설된 뉴웨이브문학상(1억원)도 주제 및 소재 제한 없이 작품을 모집하고 있다.
문화예술위는 문예지에 게재된 우수 장편소설 지원금을 올해부터 600만원으로 올렸다. 기존엔 단편과 똑같이 300만원이었다. 분기별 심의 대상 기간 중 연재를 마친 장편이 후보작으로 검토된다. 5월에 발표된 1분기 지원 작품엔 김원일씨의 <전갈> ( <실천문학> 연재)이 선정됐고, 이달 심의될 2분기 지원작에도 여러 편의 장편이 후보에 올랐다. 실천문학> 전갈>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신문학 초창기부터 유독 단편소설에 강세를 보여왔던 상황이 이젠 한국 문학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며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장편에 몰입하면서 문학적ㆍ경제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대표는 “소수의 작가만을 발굴하는 등단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가능성 있는 작가와 출판사를 원활하게 연결시켜줄 에이전시와 경매시장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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