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 인사 책임자는 얼마전 도쿄, 봄베이, 밀라노, 파리, 뉴욕에서 스카우트 대상 인재와 인터뷰를 했다. 지구 한 바퀴를 돈 출장에 걸린 시간은 단 6일. 국내외 경쟁 기업이 인재를 선점하면 경쟁에 뒤처질 수 있어 기업들은 요즘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건다고 한다.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설파해 재계의 인재 유치전을 촉발시킨 이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핵심 인재 한 명이 수천, 수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그의 말은 인재경영의 금과옥조가 됐다. 어떤 인재를 데려오고 육성했느냐가 삼성 사장단의 주요 평가항목 중 하나일 정도다.
최근 삼성이 대대적인 경영쇄신에 나섰다고 한다. 선진 글로벌기업에 뒤지고 중국 등 신흥국 기업에 추격당하자 5~10년 뒤 삼성을 먹여살릴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발굴하고 전략투자사업을 재조정하는 등 새 도약을 위한 새판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5개월 전 이 회장이 제기한 '샌드위치 위기론'이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시작된 신경영 14년의 약발이 다하는 시점에 이 회장이 던진 새 화두는 삼성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삼성은 어디서부터 변해야 할까.
최근 인터넷을 통해 삼성전자 하계 수련회 때 신입사원들이 펼쳐보인 매스게임 장면 동영상이 급속히 유포됐다. 동영상을 보면 신입사원들은 축구선수가 공을 차고, 여성 무용수가 캉캉 춤을 추는 등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매스게임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 측은 21년째 하는 이 행사에 매년 사장단이 참석하고, 신입사원들도 삼성인으로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 혼연일체가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외부에서 볼 때 매스게임 장면은 삼성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비쳐주는 거울처럼 보인다. 기자는 여태껏 어떤 선진 글로벌기업이 신입사원들에게 집단 매스게임을 연습시키고, 또 그것을 사장단 앞에서 학예회 발표하듯 해 보이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신입사원들이야 그렇다 쳐도, 삼성 사장단이 후배들의 영글지 않은 '조직 사랑'에 흡족함을 느낀 나머지 매스게임으로 상징되는 구태의연한 조직문화가 기업에 끼쳤을 폐단을 점검하지 않은 채 21년째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문제다.
매스게임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우선시하는 행위다. 여기에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강조되면 개인의 창의력은 무시된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다. 조직과 시스템과 관행이 최우선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개인은 몰가치적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의 효율과 생산성, 환골탈태와 같은 변화와 새로운 사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금 삼성이 처한 위기도 어찌 보면 그런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삼성이 5~10년 뒤의 '먹거리'를 찾고 있는 지금, 매스게임에 참석했던 사장단은 조직에서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갉아먹는 암적 요인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인재 유치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원들이 상하좌우로 맘껏 소통하는 능동형 인간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것이 삼성이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리고 미래는 상상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황상진 경제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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