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제수학자대회 한국유치 앞장, 젤마노프 교수 기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제수학자대회 한국유치 앞장, 젤마노프 교수 기고

입력
2007.07.03 00:11
0 0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에핌 젤마노프(52) 교수는 대한수학회의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ICM) 유치를 위한 외국인 유치위원이다.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라는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외국 수학자로서 한국에 보이는 애착은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젤마노프 교수는 “최근 젊은 한국 수학자들의 성장에 경이를 느낀다”며 “한국은 ICM을 유치할만하다”는 칼럼을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이를 통해 그가 왜 대회 유치위원으로 나섰는지, 한국 수학계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은 어떤지 알 수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 인근의 노보시벌스크 태생의 젤마노프 교수는 벽지에서 군론(群論)분야에 천재적인 업적을 일궈 39세이던 1994년 스위스 ICM에서 필즈상을 받았다. 외진 곳에서 주목 받지 못하던 천재가 국제 수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이후 미국 영국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고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 석학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에는 매년 1,2개월씩 고등과학원에서 머물며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편집자주

최근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국가등급을 2단계 상향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를 자축하며 다음 세대에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전달하고자 고민해온 대한수학회가 2014년 ICM 유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의 ICM 유치위원으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받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한국은 ICM을 개최할만한 자격과 능력이 충분하다. 유례없는 성장을 이룬 한국의 ICM 개최는 개발도상국가 수학자들에게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의 25차례 ICM 중 19회가 유럽에서 개최됐는데, 2010년의 인도 ICM에 이어 아시아 연속개최의 선례를 만든다는 의미도 중요하다.

나는 10여 년 전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매년 1,2개월을 한국에서 보내며 고등과학원의 동료 교수들과 공동연구와 교류를 즐기고 있다.

가까이서 지켜본 10년 동안 한국 수학자들이 일궈낸 성장의 역사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스페인 ICM에서 고등과학원 동료교수 2명을 포함한 3명의 한국 수학자가 초청강연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감회가 깊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4년마다 열리는 ICM의 초청강연은 수학 각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업적에 해당된다.

IMU가 한국의 국가등급을 2단계 상향한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한국 수학의 성장이 IMU에 진작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이 의아스럽지만, 내가 접했던 한국 수학자들의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를 생각하면 2단계 상승은 이해가 된다.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여러 젊은 수학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수학의 여러 난제들에도 거침없이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러 오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매우 성공하고 있다. 여러 훌륭한 수학자들을 배출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어린 한국 학생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도 기쁜 소식이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거나 미국 수학자들과의 공동연구 경험을 가진 한국 수학자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 수학의 높은 수준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유럽 수학자들은 이제야 한국의 수학 수준을 알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ICM 유치를 통해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온전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ICM은 10일 정도 계속되는 수학분야 최대 학술대회다. 수학의 기본을 배우는 학생에서부터 현존하는 최고의 수학자들까지 한 데 어울려 대화와 강의를 공유하는 수학자들의 축제에 가깝다.

나는 94년 스위스 ICM에서 필즈상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필즈상은 과거의 업적에 대한 시상이라는 측면 이외에 미래의 업적에 대한 동기부여라는 측면도 강해서, 수상시의 연령이 40세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러시아의 외진 곳에서 연구를 수행했던 나는, 필즈상 수상 이후에 개선된 연구 환경에서 더 좋은 연구를 맘껏 할 수 있게 돼 그 기쁨이 더욱 컸다.

한국에서 수학을 포함한 기초과학의 홀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우려할만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부디 학문을 존중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회복하길 바란다.

어쩌면 ICM 유치를 추진하는 한국 수학자들의 노력은, 한국 수학이 세계 수학계 활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측면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한국 국민의 노력에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4년 ICM 유치 결정은 2년 후인 2009년 5월에 내려지게 된다. 유치 경쟁국인 브라질 및 캐나다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매우 힘든 노력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 국민과 정부의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을 고대한다.

에핌 젤마노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