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국민은행 김수연(21ㆍ184㎝). 2005년 꿈에도 그리던 프로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약속된 듯 했다. 하지만 정작 코트 보다는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팀에는 같은 포지션에 정선민(신한은행)과 신정자(금호생명)와 같은 내로라 하는 스타플레이어가 있었고,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많이도 울었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다. 정선민으로부터 기술력과 노련미를, 신정자로부터 궂은 일을 도맡는 희생 정신을 배우며 끊임없이 연습했다. 기회는 찾아왔다. 정선민과 신정자가 팀을 떠난 지난 겨울리그에서 우수후보상으로 두각을 드러낸 그는 2007퓨처스리그에서 평균 18.8점 20.6리바운드(1위) 1.8블록슛(1위)의 활약으로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며 차세대 스타를 예약했다.
농구는 내 운명
농구를 어떻게 시작했냐고 묻자 “창피하다”고 멋쩍어 한다. 인천 인성초교 2학년 때 농구공을 만지고 1년 뒤 농구부에 가입했으니 벌써 농구 경력 13년이다. “농구를 한 지 오래 됐는데 이것밖에 실력이 안 돼 부끄러워요.”
계기는 단순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그는 자연히 농구부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처음엔 코치가 매일 훈련 끝나면 주는 용돈 500원에 혹해서였다. 하지만 어느덧 농구의 재미에 흠뻑 취해 버렸다. “농구 그만두고 싶은 적요? 전혀 없어요. 농구는 내 운명 같아요. 어릴 때도 농구공만 끼고 살았죠. 대신 공부와는 담 쌓았고요.”
어머니의 이름으로
어머니는 그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최고의 친구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족은 어머니와 단 둘이 됐다. 그래도 어머니의 뒷바라지 속에 농구 선수를 꿈꾸며 밝게 자랄 수 있었다.
이번엔 딸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뒷바라지 역이다.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했다. “그동안 어머니가 고생 많았는데 이젠 제 차례죠. 프로까지 온 만큼 흐지부지하게 사라지는 선수는 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요.” “팀의 간판이 아니라 팀이 원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김수연의 농구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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