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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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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고도를 기다리며

입력
2007.07.0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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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청소년공연예술제 폐막작으로 대만 당대전기극장(當代傳奇劇場)의 <고도를 기다리며> (우 싱 꾸오 연출)가 공연됐다.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 부조리극으로, 최소한으로 줄인 듯한 무대 요소와 그 해석의 다의성으로 인해 현대 극예술가들의 도전욕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메시지의 시의성이나 새로운 해석보다도 동서양 연극문화의 상호 교환과 연기술 탐구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공연물들이 자주 내비치는) 중화주의 스펙터클의 과시가 아예 불가능한 베케트의 미니멀리즘 텍스트는 오히려 경극 연기술의 보편적 기호로서의 극성을 잘 부각시켰다.

잠언 같기도 하고 지껄임 같기도 한 베케트 특유의 대사들이 곡조와 운율을 얻어 사색과 유희 양면을 넘나들고, 경극의 광대 축(丑)과 채플린 식 광대극의 연기방식이 부드럽게 스민다. 연극이 곧 리듬임을 체득하고 있는 배우들은 추상적 기호와 성마른 언어에 온기를 부여한다.

무대를 사방 벽을 둘러 좁혔는데 이는 인류의 존재 상황이 ‘갇힌 동물, 그러나 노는 동물’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우리 속에 드는 짐승처럼 내리닫이문을 통해 등장한다.

깁고 헤진 도포를 걸친 학인(學人)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갇힌 짐승이 그러하듯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구르고 움직인다. 소일거리 삼아 말씨름하고, 가장놀이를 벌이고, 광대놀음을 흉내 내면서 행인 ‘주인과 노예’(럭키와 포조)를 맞고 보낸다.

뿌리를 드러낸 채 거꾸로 선 나무는 현대인의 뿌리 뽑힌 삶을 표현한다. 나무 뿌리의 날카로운 선과 배우의 몸이 그리는 둥근 면, 무대 여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미장센을 만드는 이번 공연은 베케트의 희곡이 말의 성찬이 아니라 배우의 몸으로 구현하고 연주해야 하는, 놀이로 구성된 악보임을 잘 증명해냈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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