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안을 '정치하는 사고방식'으로 풀라고 지시해 업계에 파문과 혼선이 일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열린 '재래시장 정책 성과보고회' 도중 영세상인들의 민원을 받고 즉석에서 내린 지침이 상궤를 벗어난 까닭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는 대통령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시장이 말을 듣지 않으면 행정력으로 강제하겠다는 '긴급조치'식의 발상이 바탕에 깔린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노 대통령은 "(공청회 등에서) 전문가들과 토론해 봐야 (경영논리를 앞세우는) 그 양반들이 이긴다"며 "(재래시장 카드수수료 문제는) 금융전문가 사고방식으로는 못 풀고 정치하는 사고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정경제부 간부가 "다른 나라 사례를 살피고 있다"고 말하자 "다 때려치우고 한국식으로 하자"고 잘랐다. 또 대통령 단임제나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등 선진국엔 없는 것이 한국에만 있다면서 "왜 힘없는 사람에게 유리한 것은 한국에서 하면 안 되느냐"는 말도 했다. 논리의 비약을 무릅쓰고 당국과 업계가 수수료 조정을 위해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협의 방식과 성과에 강한 불신을 표출한 셈이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이해관계가 얽힌 상거래 문제를 정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정책적 유도'라고 둘러대지만, 영세상인들의 형편이 딱하다고, 카드사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한 수많은 주주들의 양보를 요구할 권리는 대통령에게 없다.
카드사가 협상력이 강한 대형 업종엔 낮은 수수료를, 협상력이 약한 영세업종엔 높은 수수료를 매겨 중소상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측면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면 한국식 해법으로 가자"는 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가와 적정이윤을 세밀하게 따지고 불공정한 관행을 잡아내 카드사가 변명할 구실을 봉쇄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매사 '강자의 관용'을 강조하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이번엔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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