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총장들이 29일 ‘대반격’에 나섰다. 사흘 전 청와대에서 2008학년도 대입 전형안과 관련해 대학들의 이기심을 꾸짖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방적인 ‘훈시’를 들어야 했던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듯 작심하고 정부 내신(학교생활기록부) 대책을 비판했다.
이날 오전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가진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총회 자리에서다. 일격을 당한 교육인적자원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사립대의 내신 반발로 가뜩이나 ‘누더기’가 될 처지에 놓인 새 대입안은 또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대입안 조기 확정을 기대했던 수험생들도 더 큰 혼란을 겪게 됐다.
총장들의 역공
사립대 총장들의 목표물은 교육부가 24일 내놓은 내신 대책이다. 대책의 핵심인 내신 실질반영률 50% 확대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총장들의 입장이다. 사실 사립대 총장들은 그 동안 침묵했다.
12일 연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 일부 사립대가 ‘내신 1~4등급 만점 처리 방안 검토’를 내놓고, 교육부가 “강행하면 제재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2차례나 발표할 때에도 입을 닫았다. “내신 등급 만점처리는 포기하겠지만 실질반영률 50% 확대는 어렵다”는 주요 6개 사립대 입학처장들의 공동 입장에도 ‘지원 사격’은 없었다.
26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고등교육 전략적 발전방안’ 보고회도 총장들의 완벽한 판정패였다. 대학 현안 관련 토론회를 겸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총장들은 ‘자물쇠’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이날 총장들의 급작스런 입장 표명과 태도 돌변이 주목 받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총장들이 대학입시 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3월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공개적인 ‘3불 정책 반대’의 연장선에서 이번 내신 대책 수용 불가 방침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3월 당시 사립대총장협의회는 대입시 자율화를 요구하면서, 고교 등급제와 본고사,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을 사실상 폐지할 것을 주장해 파장을 불러왔다.
A사립대 P총장은 “내신 실질반영률을 한꺼번에 50%까지 올리라는 것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아예 없애겠다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는 “내신 실질반영률은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옳다”는 내용을 교육부에 건의했던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의 요구 사항과도 엇비슷하다. 입장 발표 시기만 달랐을 뿐 입학처장들과 공동 보조를 취함으로써 ‘대학간 다른 목소리’ 우려도 불식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립대 총장들은 특히 내신 문제뿐 아니라 노 대통령이 “확대해야 한다”며 무게를 실어주기도 했던 기회균등할당전형도 반대했다. 겉으로 “이 전형이 도입되면 지원자 대부분이 서울 지역 대학들로 몰려 지방대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댔지만, 정부가 특정 전형의 학생선발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속내다.
2008 대입시 미궁 속으로
사립대 총장들이 2008 대입시 제도 개선을 직접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새 대입 전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지게 됐다.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사립대학이 내신 실질반영률 50% 확대를 거부한 데다, 이들 대학의 수장인 총장들까지 가세한 것은 교육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부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이날 자신에게 직격탄을 날린 총장들 앞에서 “헌법에서도 대학 자율성은 무제한적 자유가 아니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했다”고 강조했다. 대학들이 정부의 의도와 다른 대입 전형안을 강행할 경우 제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일선 교육 현장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총장들의 대입안 거부 입장에 대해 고교들은 크게 동요했다. 서울 휘문고 이모 교사는 “교육부와 대학의 안중에 학교는 없는 것 같다”며 “이런 식이라면 대입 전형안이 조기 확정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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