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지음 / 다할미디어 발행ㆍ298쪽ㆍ1만원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첫사랑 최승구에게 편지를 띄운다. “오늘 나는 결혼했습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긴 편지를 통해 군수의 딸로 태어나 차가운 거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고백한다.
물론, 실제로 나혜석이 쓴 편지는 아니다. 나혜석기념사업회 운영이사인 윤범모 경원대 미대 교수가 나혜석과 주변 인물이 남긴 각종 기록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간통으로 이혼당한 후 <이혼고백서> 를 발표하는 등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나혜석이었기에 이런 형식이 가능했다. 저자가 빌려온 나혜석의 진솔한 육성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한 여성의 인간적 면모에 쉽고 가깝게 다가가도록 한다. 이혼고백서>
책의 제목은 나혜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가운데 하나다. 도쿄 유학 시절 사귀던 최승구가 세상을 떠난 후 나혜석은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한 방편으로 오빠 친구인 김우영과 결혼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결혼한 나혜석은 남편을 데리고 죽은 애인의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비석을 세웠다.
나혜석은 서울에서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열고, 봉건적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발표하는 등 예술가로서 이름을 높였지만 파격적인 개인사로 더 많은 관심을 모았다. 남편과 함께 떠난 세계일주 여행 도중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불륜으로 이혼했고, 이혼 후 그를 외면한 최린에게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는 그를 당시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았다. 여고 졸업부터 나혜석의 온갖 개인사를 낱낱이 기록했던 신문에 남겨진 나혜석의 마지막은 “소지품 없는 행려병자의 죽음”이었다.
나혜석이 과연 사회와 남편, 자식들에게까지 외면당할 만큼 타락한 여자였을까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나혜석은 봉건적 속박 속에서 자유를 찾아 평생 싸운 여성 선각자였다”고 결론짓는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