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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용서 구하는 자들

입력
2007.07.0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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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400만 달러를 물어내라는 '바지 소송'에서 '단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 승소한 미 워싱턴 동포 정진남씨 부부는 터무니 없는 변상 요구로 자신들을 괴롭혀 온 미국인 판사를 "이미 용서했다"고 말했다. 실수로 잃어버린 바지 때문에 2년 넘도록 시달렸지만 그를 용서하는 것으로 악연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랐다고 했다.

예순의 나이로 보나, 세탁소를 운영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을 이력으로 보나 그들은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용서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주류 사회의 판사에게 미약한 유색 이민자가 겪었을 엄청난 고통을 생각하면 용서가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지만, 그런 용서와 관용은 오히려 약자들이 솔선하는 경우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용서는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준다'는 본래의 뜻을 넘어 화해와 화합으로 이어질 때 한 단계 더 승화된다. 흑백 갈등과 대립을 넘어 새 국가로 탈바꿈한 남아공은 넬슨 만델라가 발휘한 용서의 지도력 덕이었다.

과거 가혹한 탄압이나 박해를 받았던 우리 재야 야당 지도자들도 용서를 말하는 것으로 정치보복이 없을 것을 약속하며 정권 경쟁을 벌였다. 용서는 약자나 피해자가 강자나 가해자에게 펴 보일 때 진가가 돋보인다.

● 약자ㆍ피해자의 용서가 값진 법

선거의 계절에 들어서자 정치권에서 용서를 구하는 행렬이 분주하다. 대선 후보를 만들기 위한 범 여권의 기획들이 그것이다.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새 전열을 정비하려는 여러 방안은 결국 집권 기간의 잘못을 덮어달라는 용서 구하기 작업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소홀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여겼다"는 등의 고백들이 민심을 잃은 여당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해 달라는 말이다.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직접 통합 불가를 주장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국민의 용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집권 실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 좌 편향 인사들과는 당을 함께 할 수 없으며 "각기 후보를 정해 이후 후보 단일화를 해내면 그 때 가서 국민의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합 작업은 어떤 식으로든지 열린우리당의 형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 5명은 얼마 전 회동한 후 "지난 날 분당의 결과를 가져온 점에 대해 그 동안 많은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죄송하게 생각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사과이다. 민주당을 향한 성의 표시이지만 열린우리당의 흔적 지우기 작업인 셈이다.

선거는 구도의 게임인 만큼 어떤 경로로든 구도를 분명히 만들 수 있으면 유권자의 선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통합작업의 계산이고 희망이다. 유권자가 외면하기 어려운 양자구도를 제시하면 "잊지는 않겠지만 용서는 하겠다"는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집권 실패의 피해자인 국민이 이들이 구하는 용서를 얼마나 용인할지는 그 때 가 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이런 선거에 대한 경계는 한나라당에서 벌써 나온다.

경선 제3 후보인 홍준표 의원이 자신을 내세우며 내놓는 대선 전망은 거칠지만 그럴 듯하다. "범 여권은 한나라당처럼 순진하게 정책 토론하고 얼굴 붉혀가며 서로를 검증하는 절차를 생략한 채 '붙었다 떨어졌다, 모였다 헤어졌다' 하다가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한나라당과의 적대구도를 짜기에 적합한 후보를 내세워 한방에 보내는 사술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이 좌파정권 연장에 반대하는 듯하지만 반전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믿기에 그들은 대선을 불과 6개월 남기고도 저렇듯 느긋할 수 있다"고도 했다.

● 범여권의 심판 회피구도 만들기

인간적인 용서는 아름답기만 하지만 정치적 용서는 목적과 동기, 결과까지 망라하는 전략적 행위이다. 선거는 심판이다. 다가올 대선이 잘못을 심판하는 선거가 아니라 실패를 용서하는 선거가 될 것인지 여부가 또 하나의 관건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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