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서는 안 될 전쟁이 잊혀지고 있다는 착잡함 속에 6월이 가고 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6ㆍ25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조사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 받고 있다. 6ㆍ25를 겪은 세대, 전쟁의 피해가 컸던 사람일수록 충격이 더 크다.
<월간중앙> 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 3~6학년생 3,66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조사 결과는 놀랍다. "6ㆍ25가 어느 시대에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현대'라고 대답한 학생은 46.2%에 불과하고, '조선시대' 37.8%, '고려시대' 7.4%, '삼국시대' 5.5% 등의 대답이 나왔다. 월간중앙>
"6ㆍ25는 일본이 한국 침공한 것"
"6ㆍ25는 누가 어떻게 일으킨 전쟁이냐"는 질문에는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 72.1%, "일본이 한국을 침공했다" 21.5%,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 2.3%,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1.2%였다. "6ㆍ25에 대해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다" 는 학생이 65.5%, "배운 적이 없다"는 학생이 33.5%였다.
한국갤럽이 전후 세대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ㆍ25 전쟁이 일어난 해를 알고 있는 사람은 20대의 46.8%, 30대의 62.9%, 40대의 75.5%에 불과했다. 6ㆍ25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의 불법 남침' 52.3%, '미국-소련의 대리전쟁' 35.7%, '민족해방 전쟁' 7% 등으로 응답했다. 2002년 조사에서는 '미국-소련의 대리전쟁' 44.5%, '북한의 불법 남침' 31.2%, '민족해방 전쟁' 11.9% 등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6ㆍ25로 인해 분단이 고착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남북한 모두' 33.2%, '북한' 33%, '한반도 주변국가' 18.2% 등으로 나왔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 비해 전후 세대의 6ㆍ25 인식은 보다 객관적이다. 또 과거의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 등으로 좌경화했던 인식이 우측으로 현저하게 이동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전후세대의 6ㆍ25 인식과 학교교육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근ㆍ현대사 교육은 파란만장했던 역사 속에서 심하게 왜곡되어 왔다. 6ㆍ25도 그 중의 하나다. 남북 공존과 화해로 남북정책의 기조가 크게 바뀌면서 초중고 교과서도 달라졌다.
6ㆍ25의 책임과 피해를 강조하던 내용은 사라지고 민족공동체와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6ㆍ25를 서술하는 분량이 줄었고, 고교과정에서는 근ㆍ현대사가 선택과목이어서 아예 6ㆍ25를 배우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57년 전 전쟁에서 살아 남은 아이들은 '6ㆍ25의 노래'를 애국가 만큼이나 자주 불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아아>
전쟁을 겪은 아이들에게 인민군이나 중공군은 '원수'였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그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반공을 주제로 글을 쓰는 대신 민족공동체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기쁜 일이다.
그러나 민족상잔의 전쟁을 덮은 채 민족공동체와 통일을 가르치는 것은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평화가 그토록 절실한 것은 동족이 서로를 죽인 전쟁의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전쟁'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숱하게 다짐했다. 그런데 왜 3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6ㆍ25전쟁에 대해서는 "용서는 물론 기억도 하지 말자"고 가르치는 걸까. 일본의 역사인식을 그토록 비난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망각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6ㆍ25를 배우지 않고는 그 후의 반공 강박증, 안보독재, 민주화 운동, 좌경화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무조건 불신하고 적개심을 갖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6ㆍ25는 잊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다. 우리 아이들이 6ㆍ25에 대해 바보같은 대답을 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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