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동진의 영화, 영화인]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전수일 감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동진의 영화, 영화인]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전수일 감독

입력
2007.06.28 00:17
0 0

전수일 감독(47)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한국영화계의 이단아? 독립군? 1997년 <내 안에 우는 바람> 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주목을 받은 이후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와 이번의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까지. 남들이 알든 모르든, 알아주든 말든, 꾸준히 독립영화를 찍어왔다.

그뿐인가.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검은 땅의 소녀와> 도 남아 있는데다, 프랑스 지원을 받아 네팔에서 올 로케로 찍는 신작을 준비중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전수일 감독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묻는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은 현재 극히 소수 스크린에 걸려있긴 하지만, 이걸 ‘이번 작품’이라고 얘기하기는 좀 뭣한 감이 있다. 이미 2005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열렬한’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일반극장까지 오는데 2년 가까이나 걸렸다. “2년 전과 지금이라…글쎄요. 나는 작품을 만들면 바로 털어버리는 습성이 있어서요. 별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제작환경은 여전히 어렵고…뭐 달라진 게 없지요.

게다가 <검은 땅의 소녀와> 촬영을 이어서 들어간 데다 얼마 전부터는 네팔 프로젝트에 매달려놔서요. 그냥, 계속 영화를 만들 뿐이에요.”

세상과 영화판에 대해 냉소적이기 일쑤지만, 신작 아닌 신작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수일 감독이 좀 변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전보다 유머러스해졌고, 약간은 여유가 생겼으며, 조금은 세상과 영화판을 용서하려고 하는 느낌을 준다. 예전의 그를 보고 있으면 정말 전투를 하는 사람 같다고 느꼈다.

“독기가 있었죠.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때가 한창 날이 서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든다는 게 온통 자본에 휘둘리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까지 내가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영화는 어차피 내가 가는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과 각을 세우는 것도 지나친 욕망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다음부터는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속에 나오는 영화감독 상규는 전수일 자신의 모습을 빼 닮았다. 주인공은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다 고향 속초에 잠시 들르지만, 부산에서나 속초에서나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인간이다.

영화는 크게 세가지 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이북에 있는 남편과의 상봉을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숙모와 관련된 얘기이고, 또 하나는 4살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아 속초와 태백, 도계를 헤매는 여인 영화와의 얘기이며, 또 하나는 온통 카지노가 들어서는 바람에 예전에 살았던 자신의 집을 찾지 못해 절망하는 주인공 상규.

세 얘기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상규가 영화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자신의 뿌리(집)를 잃었고, 순수한 감성을 상실했으며(잃어버린 동생), 한편으로는 자본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이산가족-분단-기형화된 자본주의)때문이다.

상규 개인의 문제는 우리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전체의 문제는 곧 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는, 변증법적 태도가 이 영화에는 담겨져 있다. “허허. 해석이 좋네요. 어느 날 고향 속초에 갔다가 어릴 적에 살던 집을 찾지 못해 헤매면서 이 영화를 생각했을 뿐이에요.

근원을 찾는 게 항상 나의 영화적 주제니까요. 영화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과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을 합친 겁니다. 이 영화도 그런 나의 이중의 경험에서 나온 거죠.”

하지만 그의 영화엔 늘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예술적인 투지만 가지고는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렇다면 이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고집스럽게 영화를 찍어야 하는가. “내 영화인생의 모토는 노마드에요. 사적인 다이어리 같은 거죠. 영화는 의지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 자체입니다.”

전수일 감독은 영화를 늘 3억5,000만원 정도로 찍는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의지나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 10배 20배의 돈으로 만들어 결국 쩔쩔매는 꼴이 되고 있는 영화계를 두고 무척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거의 단관 개봉 수준에서 소수 관객만을 만나는 것에도 짜증이 날 것이다. 하지만 벌써 6번째 작품에 들어간다. 한국에서 영화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전수일처럼만 하면 된다.

영화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