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융자 거래가 활성화하면 거래가 건전해지고 투자자들 역시 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2006년 9월)
"외국계 증권사는 한 곳도 신용융자를 해주지 않지만 국내 증권사들만 외상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증권사 직원 성과급과 연결돼 모럴 해저드 성격도 있다." (2007년6월)
불과 수개월 만에 금융감독 당국의 입장이 180도 돌변했다. "신용거래 활성화"를 강변하던 금융감독 당국이 이제는 신용거래를 늘리는 증권사를 강도 높게 압박하며 부랴부랴 제동을 걸고 있다. 그것도 새 제도가 시행된 지 2개월도 안되서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금융감독 당국이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게 됐다.
금융감독 당국이 신용거래 활성화 대책을 처음 내놓은 것은 지난해 9월. 단타 매매 등 불건전 주식거래 관행을 부추기는 증권 미수거래(위탁증거금만으로 주식을 매수한 뒤 결제일까지 매수 잔금을 증권사에 납입하지 않은 거래)를 억제하는 내용이었다.
결제 불이행 시 향후 30일간 100% 현금 증거금만으로 거래가 가능토록 하는 '미수동결계좌제도'를 시행해 미수거래를 사실상 금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 신용융자 거래는 연속재매매 허용 등으로 활성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투자자와 증권사가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선진화한 주식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5월1일 미수동결계좌제도가 시행되자 금융감독 당국의 '장밋빛 기대'는 '잿빛 현실'로 나타났다. 증시 활황과 함께 연초 5,000억원에도 못미쳤던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 25일 7조원을 돌파했다. 1주일 안팎에 빚(신용잔고)이 1조원씩 늘어났다.
증권사들이 1인당 신용융자 한도를 대폭 높이고 담보유지비율을 낮추는가 하면, 신용거래 가능 종목을 확대하는 등 신용거래를 부추긴 탓도 있었다.
금융감독 당국의 공언처럼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리스크를 더욱 조장한 것이다. 자칫 증시가 하락하면 돈을 빌린 개인, 빌려준 증권사, 그리고 매물 부담을 안은 증시 모두 직격탄을 맞을 판이었다.
그러자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가 돌변했다. "향후 증시 상황 급변시 증권사 및 투자자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증권사들의 모럴 해저드다"며 잇따라 경고를 내놓았다.
급기야 ▦증권사별 신용융자 규모 5,000억원 이하 ▦자기자본의 40% 이하 등 신용융자 축소 가이드라인까지 직접 제시했다. 청와대의 증시 신중론도 한 몫을 거들었다.
제도 시행 2개월도 안돼 감독 당국이 180도 다른 입장과 정책을 쏟아내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시 활황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지만, 선진국 사례에만 의존한 '미수 거래=불건전, 신용거래=건전'이라는 안일한 인식이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빚을 이용하는 기간이 길어 누적 손실이 커질 수 있는 신용거래가 미수거래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는 만큼 제도 시행 전에 리스크 관리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시장 리스크가 커질 만큼 커진 뒤 뒤늦게 대책을 내놓아 시장 혼란만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 대응을 하는 것이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강변은 정책 실패에 대한 무책임한 변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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