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를 테러국가로 단죄하는 근거가 된 1988년 '로커비 테러'의 진상이 재조명될 모양이다. 런던 발 뉴욕 행 미국 팬암 여객기가 폭탄테러로 스코틀랜드 로커비에 추락, 270명이 숨진 사건은 2003년 스코틀랜드 법원이 범인으로 기소된 리비아 정보요원의 종신형을 확정한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의 재심 청구를 심리한 스코틀랜드 형사재심위원회는 3년 만에 '허점 투성이 오심'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영국 언론이 전한다. 오늘 공식 발표될 재심 결정으로 국제테러 정치학이 세상을 우롱하는 현실이 바뀔지 궁금하다.
■로커비 테러는 당초 이란의 사주를 받은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의 범행설이 유력했다. 이란은 그 해 여름 페르시아만에서 미 해군이 이란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한 것에 보복했을 개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수사상황을 3년이나 비밀에 부쳤다가 91년 11월 느닷없이 리비아의 소행이라며, 몰타 주재 리비아 정보요원과 항공사 직원을 하수인으로 지목했다. 증거는 사건 6개월 뒤 추락 현장에서 발견했다는 손톱만한 시한폭탄장치 파편과 셔츠 조각이었다.
■두 나라는 범인들이 플라스틱 폭탄을 카세트레코더에 숨긴 뒤 셔츠와 함께 가방에 넣어 몰타공항에서 뉴욕으로 탁송, 런던에서 팬암기에 실리도록 했다는 추론을 제시했다. 정보요원에게 셔츠를 팔았다는 몰타 상인의 증언이 물증과 연결짓는 유일한 고리였다.
이 때문에 91년 걸프전을 앞두고 이란을 회유하기 위해 미적거리다 결국 만만한 리비아를 골랐다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다. 테러 자체가 미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는 설까지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92년 유엔 안보리 경제제재 등으로 리비아를 압박, 테러지원을 응징하는 본보기로 삼았다.
■세계 7위 산유국이면서도 경제봉쇄에 목이 졸려 허덕이던 리비아는 견디다 못해 99년 정보요원 등 2명을 재판에 넘기고, 희생자 유족에게 1,000만 달러씩 배상하기로 타협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도 포기, 관련자료 일체를 미국에 맡겼다. 타협 대가는 경제제재 완화와 대미관계 정상화다. 북핵 해법으로 거론되는 '리비아 모델'이다.
그러나 로커비 사건 재판이 증거와 증인의 신뢰성을 검증하지 않은 엉터리로 공식 확인된다면, 국제테러를 둘러싼 온갖 음모와 공작에 국제사회가 휘둘리는 현실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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