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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등나무' 등 모네의 말년 그림 동양의 일필휘지 그림과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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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등나무' 등 모네의 말년 그림 동양의 일필휘지 그림과 닮아

입력
2007.06.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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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는 빛의 화파다. 인상파 화가들은 조형의 진정한 대상이 눈앞의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없다면 보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까닭에 인상파 화가들의 이같은 인식은 회화의 진로를 바꾼 혁명이 되었다. 그 혁명의 수장이 바로 클로드 모네다.

사실 모네 같은 빛의 화가를 우리 미술사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리 옛 화가들은 그림에 그림자를 표현하지 않았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를 떠올려 보자. 거기 어디에 그림자가 그려져 있는가.

그림자를 그리지 않으니 빛 또한 그리지 않았다. 서양 미술사에서는 로마 시대 벽화부터 또렷이 보이는 빛과 그림자의 표현이 우리에게는 애당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모네와 인상파의 등장은 수 천 년 서양 미술사의 전통이 그 정점에 이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서양 전통의 정점으로 올라선 인상파의 그림이 동양 전통의 일필휘지 그림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일필휘지한다는 것은 사물의 겉모습과 디테일에 매달리지 않고 간단없는 붓질로 대상 본래의 기운과 흐름을 잡아내는 것을 말한다. 인상파의 그림, 특히 모네의 말년 그림이 이런 특징을 매우 잘 보여준다.

이번 <빛의 화가-모네> 전에 출품된 <수련> 등 지베르니 시절의 그림들은 대상의 겉모습과 디테일에 매달리지 않는 모네 특유의 분방한 예술세계를 생생히 보여준다. 서양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대상의 형상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빛의 세계요, 우리 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기와 운이 생동하는 득의(得意)의 세계다. 꼭대기에 서면 극과 극은 이렇게 서로 만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보게 된 그림들은 <수련> (1917~19), <수련 습작> (1907), <등나무> (1919~20) 등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들이다.

끝없이 결을 만드는 수면 위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내려앉은 버드나무 가지들. <수련> (1917~19)의 구성은 이렇듯 단출하지만, 모네의 붓놀림이 전해주는 자유로운 기운은 우리의 영혼 저 밑바닥까지 커다란 울림으로 뒤흔든다.

동양의 옛 대가가 그렸다 해도 그리 믿을 만한 기와 운이 살아 숨 쉰다. 그런가 하면 여백의 미를 살린 <등나무> 는 물리적인 빛이 정신적인 빛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환상을 경험하게 한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그림들이지만, “모네는 하나의 눈이다. 그러나 그 얼마나 대단한 눈인가”라고 외쳤던 세잔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득의작들이다.

이주헌ㆍ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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