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 고용 시장이 요동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대기업들은 속속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보호법 시행에 따른 인건비 증가와 노무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벌써부터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의 핵심은 외환위기 이후 무차별적으로 확대된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막아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2년 넘게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동일 업무를 하는 정규직에 비해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은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는 고용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7월부터 모든 정부 공공기관을 비롯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들은 순차적으로 법 적용을 받게 했다.
●여유 있는 대기업들 정규직 속속 전환
대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물꼬는 우리은행이 텄다. 우리은행은 3월 비정규 창구직원 3,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어 신세계(5,000명) 홈플러스(2,600명) 현대차(377명) 기아차(109명)가 근무기간에 상관없이 7월 1일부터 비정규직 꼬리표를 떼주기로 했다.
일부 대기업들이 연간 15억~200억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드는 정규직 전환에 앞장 선 것은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비정규직들이 차별 시정 제소를 할 경우 불거질 수 있는 노사분쟁의 싹을 미리 제거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 시행의 부작용은 훨씬 더 심각하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업무를 외주 용역으로 대체하고 그 동안 근무해 온 비정규직들을 무더기 해고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외주 용역을 쓸 경우 ‘2년 후 정규직 전환 의무’ ‘차별 시정 제도’ 등의 비정규직 보호법 규정을 피할 수 있다.
●계약 해지 등 역효과 공공기관서도 예외 없어
뉴코아는 직접 고용하던 비정규직 계산원을 없애고 외주 용역으로 대체키로 해 노사가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다. 뉴코아는 이미 킴스클럽 서울 강남점과 성남 야탑점의 비정규직 계산원 380명 전원에게 7월 이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금융 정보기술(IT) 솔루션 전문회사 코스콤도 전체 인원의 75%를 아웃소싱 하려는 계획을 추진해 비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CJ홈쇼핑과 LG생활건강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했던 그래픽 분야와 판매 업무를 외부 용역으로 돌렸다. 현대백화점은 계산 업무 외주화를 이미 결정했고 그 규모를 놓고 노조와 협상 중이다.
비정규직 계약해지 사태는 공공기관에서도 일어난다. 강원도교육청은 2월 병설 유치원 전임강사 25명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청주대 시설관리 비정규직은 5월에 계약 만료 공문을 받았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연말 6,7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들을 상대로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약기간을 올해 5월 30일까지로 제한했다. 모두 7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전에 비정규직을 정리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노사 모두 불만 역효과 논란 증폭
법 제정 때부터 이어져 온 비정규직법 역효과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오히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를 몰고 오는 등 ‘비정규직 양산법’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차별 시정 제도 등을 비켜가기 위해 기업들이 비정규직 업무를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법 폐기까지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영 상황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고용의 유연성을 떨어트려 결국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특히 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 두드러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 취지에 맞게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으로 정착하려면 이해집단간 양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은 차별과 고용불안을 겪는 비정규직들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망”이라고 강조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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