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전격적으로 이뤄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의 방북은 북핵 문제의 앞날을 밝게 했다. 2ㆍ13 합의 이행을 석 달 넘게 지연시킨 BDA 문제가 어렵사리 해결된 직후,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가 평양까지 찾아가 합의 이행을 함께 다짐한 것은 6자회담 틀의 신뢰와 활기를 되살렸다.
이에 따라 영변 핵시설 폐쇄 등 초기조치가 순조롭게 이행되고, 비핵화와 북ㆍ미 관계정상화 등 후속 논의도 한결 나은 여건에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힐 차관보는 1박2일 평양 방문에서 6자회담 진척을 위한 모든 측면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핵 시설 불능화 등을 조건으로 에너지를 지원하고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등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의지와 상호 신뢰를 확인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북한이 힐을 초청하고 미국이 즉각 응한 것부터 BDA 갈등에도 불구하고 9ㆍ19 공동성명과 2ㆍ13 합의에 담긴 북핵 협상 의지가 변함 없음을 알리려는 의도다. 이런 상징성이 획기적 제안이나 구체적 합의보다 오히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비핵화 전체 과정이 순탄하거나 목표 달성이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북ㆍ미 모두 협상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목표를 향한 자세와 발걸음은 여전히 많이 다르다.
간단히 말해 북한은 비핵화 단계마다 미국의 대응조치 또는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에너지 지원 등 당장 아쉬운 걸 챙기는 동시에 미국의 선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반면 북한을 불신하는 미국은 비핵화 프로세스 전체를 연계하는 포괄적 해결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단계마다, 사안마다 갈등과 대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힐 차관보는 이르면 올해 안에 북ㆍ미 관계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시사한 바 있다. 남북한 미국 중국의 4자 정상회담을 통한 포괄적 해결과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방안도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든 관건은 북ㆍ미 양쪽의 선의와 상호 신뢰다. 이번 방북과 그 성과가 이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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