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전격 방북을 계기로 미측의 대북 접근방식이 수정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한국과 미국 양측에서 대두되고 있다.
6자회담 틀 안에서의 대북 접촉 원칙을 고수하던 미국이 북한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6자 회담을 재개 시키기 위한 12월 베이징 회담이나 2ㆍ13 합의의 단초가 된 1월 베를린 회담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제3국도 아닌 적성국인 북한에서의 회담이나, 북측의 예정되지 않은 급작스러운 초청에 대한 미측의 전격적인 방북결정이 이런 판단의 근거다. 특히 네오콘의 후원자로 불리는 딕 체니 부통령도 이번 방북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북접촉에 관한 미 행정부 고위층의 시각이 그만큼 변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향후 북측의 핵 시설 폐쇄조치가 이어지고, 핵 시설 불능화 등 2단계 조치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갈 경우 북미접촉이 더욱 잦아지리라는 전망이 유력해지고 있다.
이에 맞물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측 고위층의 답방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래서 북미화해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0년 10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북미관계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직전까지 갔다.
이 경우 남북관계 역시 급진전될 공산이 크다. 이런 흐름이라면 올 하반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전례 없는 남ㆍ북ㆍ미 화해시대를 열기 위한 전제조건은 비핵화의 진전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들어갈 미측이나 우리측의 대선일정으로 볼 때 이 같은 변화를 촉발시킬 비핵화 진전의 기준은 올해 내 북한 핵 시설의 불능화 여부가 될 것이다.
물론 미측의 공식적인 자세는 여전히 신중하다. 북미관계 개선의 관점에서 이번 방북의 의미를 부각하려 하지 않는다. 숀 맥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정책에 있어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일부 관리는 “이번 방북은 ‘힐 차관보의 6자회담국 순방에 우리도 포함돼야 하지 않느냐’는 북측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이는 북측이 아직 비핵화 진전을 위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다수다. 결국 향후 북측의 태도가 북미 또는 남북미의 관계를 결정짓는 1차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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