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과 관련, 헌법소원 제기라는 강공책을 택한 것은 연말 대선 정국을 겨냥한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과 맞물려 있다.
대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입이 묶일 경우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권의 공세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와대의 법적 쟁송 추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더라도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현실적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청와대는 대통령이 법적 쟁송에 당사자로 참여한 선례가 없는 데다 이에 대한 여론 악화를 우려해 선관위 결정에 대한 법적 대응을 놓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18일 선관위가 재차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을 결정하자, 청와대 내부 기류가 더 이상 법적 대응을 미룰 수 없다는 쪽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판단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경우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위축되는데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노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반복하면 선관위로부터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헌소 제기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법이 들어있다. 먼저 헌재의 결정을 앞두고 합헌이냐, 위헌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하다.
친노(親盧)진영에서는 당연히 국민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들어 대통령의 발언 제한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펼 것이고, 보수진영을 비롯한 비노ㆍ반노쪽에서는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며 합헌 쪽에 무게를 실을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정국의 주요 이슈로 여전히 부각시키면서 여론 양분을 통한 친노 세력의 결집을 꾀할 수 있다. 보수진영의 중심 세력인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이 각을 세우면서 자연히 청와대가 범여권의 무게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수 있다.
또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청와대는 별반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위헌 결정시에는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 단 격’으로 노 대통령이 대선 정국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
한나라당을 공격하는 발언도 가능하며 범여권 대선후보 선출 문제에서도 노 대통령이 입김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합헌 결정이 날 경우, 정치적으로 위축 받을 수 있지만 이미 문제 제기를 했던 사안이므로 치명상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종종 선관위에 발언 원고를 내고 점검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헌법소원 방침에 대해 “끝없는 논란 거리를 만들어 대선에 개입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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