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리(23ㆍ여)씨는 가구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단지 어디서나 똑 같은 천편일률적인 사각형 책상이 맘에 안 들었을 뿐이다. 그는 4월 G마켓(gmarket.co.kr)의 '나만의 가구 만들기' 이벤트를 친구로부터 들었다. 당선보단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이틀동안 공을 들여 기발한 책상 설계 도안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360도 원형 책상.' 곡선의 원형 칸막이라 집중력을 높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 아니라 방대한 수납공간까지 자랑한다. G마켓은 두 개를 만들어 한 개는 황씨에게, 한 개는 인터넷 경매에 붙였다.
경매가는 18만2,000원. 대박 조짐이 보이자 G마켓은 30개를 추가로 만들고 있다. 황씨는 "그냥 새로운 가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 때문에 만들었는데 누군가 돈을 주고 산다니 새롭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계은(20)씨와 채진선(20)씨는 지난해(당시 고3) 교복업체 '아이비클럽'이 주최하는 공모전에 아이디어가 당선돼 교복 제작캠프에 참가했다. 둘이 직접 만든 '후드형 교복'은 올해 남녀 동복 신제품으로 출시됐다. 김씨는 "평소 친구들이 교복 재킷 안에 후드 티를 함께 입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소비자가 똑똑해지고 있다. 컨슈머(소비자ㆍConsumer)에서 프로슈머(생산참여소비자ㆍProducer+Consumer)로, 이젠 크리슈머(창조적소비자ㆍCreative+Consumer)까지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데(컨슈머) 그치지 않고, 상품 제작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더니(프로슈머), 지금은 소비자가 직접 도안하고 제작(크리슈머)한 작품이 기업의 신상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진화는 '고객의 목소리와 욕구가 핵심'이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상식을 기업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한 상품은 고객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평이다.
크리슈머 바람이 거센 곳은 사이버 공간이다. 고객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와 어린이용 가구를 파는가 하면 여성고객의 요청에 힘입어 마(麻)와 같은, 상상도 못할 새로운 소재의 부츠도 나왔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소비자가 올린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작품 샘플을 다른 소비자에게 판단케 하는 방식이다.
관련 공모전도 다양한 업종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오비맥주의 카프리 제품 디자인(병+라벨) 공모, 외식업체 아모제의 외식 아이디어 공모, 베이직하우스의 티셔츠 디자인 공모, 교복업체 아이비클럽의 교복제작 캠프 등이, 컨슈머에 만족할 수 없다는 크리슈머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2월 '그녀들의 피자 콘테스트'를 열어 1등을 차지한 소비자의 피자 메뉴를 출시했다.
1인이 아닌 수많은 소비자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프로슈머 모임은 대기업이 주로 애용하고 있다. LG전자의 베스트셀러인'초콜릿폰'은 기획단계부터 소비자를 참여시킨 대표적인 프로슈머 성공 사례.
대학생과 직장 초년병이 주축이 된 싸이언 모바일 프로슈머들은 8,000여건의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초콜릿폰을 1,000만대가 팔린 히트상품 반열에 올렸다. 프로슈머가 되기 위한 경쟁률도 40대 1이나 됐다.
유수경 G마켓 리빙&뷰티사업실장은 "실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 개선점 등에서 출발한 크리슈머와 프로슈머의 아이디어 작품은 상품 만족도가 높고 소장가치가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야흐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게 요즘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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