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조페 감독의 <444>는 올해 개봉된 공포 스릴러물 중 가장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뛰는 피와 조각난 인체를 등장시켜 관객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유명배우이자 모델인 제니퍼 트리(엘리샤 쿠스버트)는 어느날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제니퍼는 어둠이 가득한 지하밀실에서 눈을 뜬다. 납치된 이유는 알 수 없고 납치범은 오직 글씨로만 대화를 시도한다. 제니퍼가 갇힌 방에는 4개의 사물함이 놓여있고, 알 수 없는 인물은 제니퍼에게 열쇠를 하나씩 건네며 그것을 열어 볼 것을 강요한다.
<444>는 관객들에게 게임을 요구한다. 주인공이 왜 갇혀야 했는지, 4개의 사물함에는 어떤 물건이 들어있을지 추측하게 만든다.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인체실험’은 인간이 가진 나약함을 소름 돋게 보여준다. 얼굴을 가린 채 주인공을 제압하는 납치범의 잔혹함과 무지막지함이 관객의 심장을 조여 온다. <444>는 중반까지는 분명 팽팽한 공포영화로 인식된다.
그러나 중반 이후 주인공을 억누르던 존재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힘을 잃기 시작한다. 영화는 개연성 없는 공포가 주는 실망감을 하나 가득 안긴다.
자중지란에 빠진 ‘악당’이 힘없이 무너지고 한없이 약해 보이던 여주인공이 원더우먼처럼 힘을 발휘할 때, 이를 보는 관객은 힘이 빠져 버린다. 게다가 제목 ‘444’가 내용상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배신감마저 느껴진다(영화의 원래 제목은 ‘Captivity’ 이다).
공포의 공간과 장치가 신선하지 못함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유도 모르고 갇혀 버린 주인공의 모습과 몸부림치는 주인공을 잠재우기 위해 수면가스가 나오는 장면은 <올드보이> 와 겹쳐진다. 올드보이>
신체 일부를 믹서로 갈고 특수한 장치를 이용해 사람을 살해하는 모습은 <쏘우> 시리즈에서 본 듯하다. 2시간을 훌쩍 넘기는 영화가 즐비한 요즘, 85분의 러닝타임으로 빠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그나마 <444>가 가진 미덕이다. 쏘우>
안진용 기자 realy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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