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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네번째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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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네번째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

입력
2007.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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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들어 온 외국인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이 왕국의 법도다. 국왕이 너희를 돌볼 것이다. 너희는 이 땅에서 일생을 마쳐야 한다.”

푸른 눈의 선원들은 조선 국왕의 엄명에 어린 아이처럼 느껴 울었다. 장편 소설 <천년의 왕국> (문학과 지성사)은 380년 전, 꿈에도 생각 못한 조선 땅에 불시착해 푸른 눈의 이방인으로 살다 간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의 이야기다.

작가 김경욱(36)은 19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조선에서 세계의 시선으로 살았던 현대적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며 네 번째 장편을 세상에 부려 놓는 소회를 밝혔다. <장국영이 죽었다> 이후 2년만의 작품이다.

계간 <문학과 사회> 2006년 여름호에서 지난 봄호까지 연재됐던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의 형태를 빌어, 역사가 누락한 이방인들의 시간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온존시키고자 한다. 박연(朴燕)이라는 이름을 얻어 조선에 뿌리 내리기까지의 10년 세월을, 1인칭 시점으로 생생히 복원해 낸다.

“<하멜 표류기> 를 보고 눈이 번쩍 했어요.” 1653년 여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좌초돼, 선원 64명중 36명만 살았다는 기사였다. 생존자 중에는 후일 조선을 탈출한 후 13년 동안의 밀린 급료를 받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한 하멜도 있었다.

소설은 조선 이름을 얻고 식솔까지 거느린 벨테브레가 본래의 자아와 낯선 땅에서 내면의 전투를 계속한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소설로 쓰지 않을 수 없었죠. 1인칭 시점을 택해 감정이입을 하려 노력했어요. 완전히 조선 사람의 심성을 갖게 된 그는 말하자면 380년 전에 조선에서 세계의 시선으로 살았던, ‘현대적 인간’인 셈이죠.”

그를 위해 작가는 과거를 탐사했고, 그 흔적은 책의 말미에 남겨져 있다. <하멜표류기> <10일간의 조선 항해기> 등 11권의 참고 서적은 기록된 역사가 놓쳐버린 이방인의 시간에 피와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양식이었다. “자료의 미흡함은 없었어요.”

사실에 근거한 작가의 상상력은 조선을 완전한 이방인의 나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신ㆍ구교 간의 갈등이 극심했을 뿐더러, 동양에 대한 터무니 없는 낭만적 상상으로 가득했던 서양이 ‘코레시안’에 대해 갖고 있음직했던 억측이 소설에서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작가는 “5년 전 서양의 중세를 배경으로 썼던 장편 <황금사과> 에서 얻은 경험이 이번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1998년 벨테브레의 13대손이 한국에 찾아온 일도 역사적 개연성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다.

일견 제국주의적 의미로도 비칠 수 있는 일이다. “제국주의보다는 세계사적 관점을 중시하고 싶어요.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시민 정신의 보루ㆍ첨병이었어요. 동인도회사를 보세요.” 그 요체였던 장사꾼 기질, 실용주의, 모험 정신을 작품에서 읽을 수 있기를 그는 희망했다. “소설에 나오는, ‘두려움 없이 살아라’는 말을 새겨주세요.”

작품을 위해 낮 시간에, 매일 20~30매씩 썼다. “감상적으로 될까 봐, 밤에는 안 썼죠.”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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