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검토보고서 변조의혹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건설교통부가 이날 지난 5월 9일 건설교통부가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원본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누가 왜 보고서를 변조했는지’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졌다.
9쪽짜리 원본 보고서와 언론에 유출된 37쪽 짜리 보고서를 비교하면 누군가 의도를 갖고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 곳곳에 눈에 띈다.
우선 원본 보고서에는 ‘TF(수공ㆍ국토연) 재검토는 제한적이므로 결과의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결론과 함께 첨부되어 있었으나 언론에 흘러간 변조보고서에선 증발됐다. ‘제한적’이라는 의미는 전후 문맥상 중간 보고서 단계인 만큼 외부 공개는 삼가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경부운하 재검토 중간보고’라는 원본 보고서의 제목이 변조 보고서에선 ‘경부운하 재검토 결과 보고’로 둔갑한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이 밖에는 두 보고서에서 크게 다른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는 보고서의 결론은 동일했고, 주요 수치 역시 사업비가 변조 보고서에서 1조5,000억원 가량 늘어난 것 외에 이 전 시장에게 불리하게 조작된 흔적은 없다.
그러나 이용섭 건교부 장관이 18일 국회에서 “(두 보고서는) 글씨체나 보고서 양식 등이 다르다”고 했으나, 거의 차이가 없는 점은 이 전 시장측이 의혹을 제기했듯이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 공사비도 늘어… "타당성 부족" 결론은 같아# 李측 "내용중 VIP는 靑서 쓰는 말" 靑 의심# 李건교 말과 달리 글씨체 비슷한 건 석연찮아
문서를 각색한 주체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설이 분분하다. 이 전 시장측은 변조 보고서를 만든 곳으로 일단 청와대를 의심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정부 및 관련기관 동향’이라는 항목에서 ‘VIP께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운하가 우리 현실에 맞느냐고 말씀’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VIP’라는 용어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이 전 시장측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속뜻을 살펴 9쪽 보고서 내용을 각색한 뒤 외부에 흘려 검증 국면에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37쪽 짜리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일각에는 이용섭 건교부 장관이 먼저 보고서 변조사실을 공개한 게 청와대는 무관하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 공식라인이 아닌 별도 TF팀이 관여했거나, 외곽의 친노그룹 등 비선라인이 동원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보기관도 이 전 시장측 의심 대상이다. 정치권 동향-관련기관 동향-언론ㆍ환경단체 동향 등으로 이어지는 정무 보고 내용이 정보기관 문건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밖에 정치권의 제3세력, 특히 박근혜 전 대표측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VIP라는 용어를 야당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데다, ‘박근혜 후보측은 경부운하 사기극이라고 비판’이라는 ‘3인칭 화법’을 구사한 점 등에서 그렇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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