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8월24일 한국과 정식 수교한다는 사실을 북한에 최종 통보한 것은 일주일 전인 17일로 알려졌다. 우리가 김수기 한국주재 대만대사에게 비공식적으로 통보하던 날짜(18일)와 하루 차이였다. 중국은 3단계로 한국과의 접촉 진행 상황을 북한에 알려 주었다.
첫 번째 통고는 양상쿤 주석이 4월13일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 축하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기회를 활용했다. 첸치천 외교부장이 이상옥 장관에게 한중 수교를 위한 비밀교섭을 공식 제의했던 날이다.
첸 부장의 저서 ‘열가지 외교이야기’에는 양 주석이 김 주석에 통고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국제정세와 우리의 대외관계를 분석할 때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주석은 이에 대해 북한은 중국이 중한 관계와 북미 관계를 조화시켜 처리해 주기를 바라며 또 중국이 좀 더 깊이 생각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양 주석은 ‘고려’라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한국과의 수교를 얘기했고 김 주석은 적어도 2~3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양 주석은 한중 수교 연기에 대한 언질을 남기지 않고 떠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통고의 임무는 첸 외교부장에게 주어졌다. 장쩌민(江澤民) 총서기의 요청에 따라 첸 부장은 방북 날짜를 7월15일로 잡았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3차례의 예비회담을 마치고 공동성명과 양해각서 문안까지 확정한 뒤 가서명을 위한 본회담 일정을 앞두고 있었다.
첸 부장의 전용기는 평양 순안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가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환영 군중이 동원돼 분위기가 대단했으나 이번에는 전용기가 공항의 구석진 곳에 착륙했고 마중을 나온 이도 김영남 외교부장 혼자였다.
묘향산 연풍호 별장으로 안내된 첸 부장은 김 주석에게 “중국과 한국이 수교협상을 진행해야 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는 장쩌민 총서기의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김 주석은 “우리는 중국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또 평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전제, 북한은 어려움을 자주적으로 극복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주석 생일에 맞춰 평양으로 들어간 주창준 주중 북한대사는 한중 수교 접촉 정보를 모르고 있다가 김 주석에게 불려가 엄하게 추궁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주창준 대사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정보망은 한중 수교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 세우는 한편 모든 인맥을 동원해 수교 저지에 총력을 쏟았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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