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KOSPI)가 1,800선 마저 가뿐히 뛰어넘으며 연일 거침없는 고공비행을 거듭하면서 장밋빛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낙관론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질곡처럼 여겨져 온 ‘쳇바퀴 장세’의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다.
풍부한 유동성과 펀더멘털 호조…“과거와 닮은 꼴”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주식시장의 랠리가 풍부한 시중 유동성과 기업의 실적개선이 맞물려 나타나는 전형적인 ‘황소 장세(Bull Market)’라는 점에서 과거 1980년대와 90년대 후반에 국내증시의 강세장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보고 있다.
코스피를 처음 산출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첫번째 전형적인 강세장은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둔 1987년 나타났다. 그 해 1월21일 300선을 넘어선 주가지수는 불과 1년 4개월 만인 이듬해 5월 24일에는 700선을 무너뜨리는 괴력을 선보였다.
당시의 증시 강세는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의 이른바 ‘3저(低) 호황’을 맞아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좋아진 데서 비롯됐다. 이 같은 기업실적 호조는 86년과 87년 각각 46억 달러와 99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풍부해진 유동성은 주식시장 상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90년대 후반의 강세장은 ‘바이 코리아(Buy Korea)’ 캠페인으로 불붙은 금융장세에서 성격이 강했다. 외환위기 이후 280선까지 주가지수가 주저앉은 상황에서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 주도로 시작된 ‘바이 코리아’ 캠페인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했고,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들까지 너도나도 적금통장을 헐어 주식투자에 나섰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때마침 불어 닥친 정보기술(IT) 열풍,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코스닥 스타 벤처기업들의 출현도 주가상승에 한몫을 했다.
장기투자 문화 정착, 중국발 상승동력… “예전과 다르다”
그러나 과거 강세장의 기억은 달콤한 추억이라기보다는 많은 투자자들에게 씁쓸함과 쓰린 상처로 남아 있다. 87년부터 시작된 대세상승은 89년 3월 31일 사상 최초의 주가지수 1,000돌파로 이어졌지만, 지금의 기관투자가와 같은 든든한 수급주체가 없었던 탓에 불과 4일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고 이후 ‘깡통계좌’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숱한 ‘개미’들의 눈물을 요구했다.
90년대 후반의 강세장도 2000년 1월 4일 1,059.04를 정점으로 속절없이 추락해 같은 해 12월 22일에는 500.60까지 밀리며 말 그대로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급락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증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에는 기업의 가치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투자가 주류였다면, 최근 국내증시의 상승은 실적이 뒷받침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증시자금 역시 단기간에 ‘대박’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은 줄어들고, 적립식 펀드 등 양질의 장기투자 수요가 주류”라고 말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최근 강세장의 가장 큰 배경인 중국의 빠른 성장과 투자확대는 일회성 특수가 아닌 지속성 호재”라며 “일부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기후퇴 가능성을 점치지만, 중국의 서부대개발 등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신중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영각 현대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를 지지하고 있어 큰 하락은 없겠지만 그래도 매매에 신중을 기해야 할 시점”이라며 “많이 오른 종목은 일정 수준 차익실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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