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려 관공서 입구를 스쳐 지났다. 느닷없이 경비원이 경례를 척 붙이며 출입문 쪽으로 손안내를 했다. 둘러보았으나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 왜? 아, 하얀 와이셔츠에 군청색 양복, 노타이(no tie) 차림의 신사(?)를 그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6월부터 8월까지는 하절기 간소복 기간으로 공무원을 중심으로 노타이 혹은 오픈칼라(open collar)로 출근해도 된다. 하지만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넥타이를 맨다. 노타이 ‘배짱’을 가지려면 고위직이어야 한다. 좀 늙어보였단 뜻이어서 웃었다.
■ 넥타이는 남성의 상징이며 일꾼의 표상이다. 고대 로마시대 군인의 목도리(focal)와 중세 크로아티아 기마병의 머플러(cravat)가 17세기 유럽에서 남성패션으로 자리잡았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도시인 행세’의 방편으로 유행하면서 넥타이란 이름을 얻었으나, ‘목이 묶여있다’는 뜻이 함축돼 있었다.
로마 군인이나 크로아티아 기마병의 그것이 선홍빛이었던 연유로 빨간 넥타이는 진취적 패기를 드러내는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1970, 80년대 전세계를 휘저었던 일본 상사(商事)맨의 마스코트는 군청색 싱글, 하얀 와이셔츠, 빨간 넥타이였다.
■ 무더운 날씨에 넥타이를 풀면 체감온도가 2도 내려가고, 그만큼 에어컨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절약되는 전기료가 전국적으로 연간 954억원이라는 게 에너지관리공단의 설명이다. 기업들이 ‘쿨비즈(Cool Biz)운동’의 일환으로 노타이 문화를 확산하고 있는 것은 전기료 때문만 아니다.
넥타이로 목을 답답하게 했을 경우 산소호흡량이 7% 감소하고 그 결과 두뇌회전이 15% 떨어진다고 하니, 당연히 사고의 유연성ㆍ창의성과 직결될 수 있겠다. 사장과 간부들이 노타이 패션쇼까지 하면서 에너지절약과 두뇌회전을 독려하고 있다.
■ 한때 여권에서 당정 간에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는 말이 유행했다. 정장한 신사끼리 한 판 붙을 때는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푸는(혹은 느슨하게 하는) 게 순서다. 지난 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최고당직자회의를 주재하면서 “넥타이 풀고 치열하게 (이 정권과)싸워야겠다”고 말했다.
그날 회의에 참석한 당직자들은 모두가 노타이 차림이었다. 하지만 하위급 당직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넥타이 풀기’는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자신만 풀지 말고 상대에게, 아랫사람에게 매지 않을 것을 권유하는 수평적이고 탈권위적 자세가 선행되면 더 좋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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